러시아 침공에 한 달 넘게 항전 중인 우크라…한국은 우크라의 '롤모델'
우크라이나 항전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 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포옹하는 피란민 부부 |
(체르니우치[우크라이나]=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아내와 아이를 국경 너머로 보내고 군에 입대하러 돌아서는 남편. 아내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 사흘간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는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졌고, 우크라이나 국적인 18∼60세 남성은 출국이 금지됐다.
그 때문에 루마니아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주(州)의 포루브네 국경검문소는 가족이 생이별하는 장소가 됐다.
한 남성은 검문소 앞에서 아내를 포옹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멀어지는 남편을 바라보던 이리냐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리냐 씨에게 왜 남편은 같이 가지 않냐고 묻자 "남편은 군에 입대해야 한다"고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남하하는 수천명의 피난민과 북상하는 아군의 모습. 1950. (중부전선=연합) |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1950년 8월에 촬영한 사진으로 제목은 '남하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과 북상하는 아군'이다.
머리에 봇짐을 이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피란길에 오른 아낙네와 차마 피난민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국군 장병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한국인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도 겪은 일이기 때문일 터다.
패색이 짙던 전쟁을 버텨내고 잿더미가 된 국토에서 번영을 이뤄낸 한국의 오늘은 우크라이나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체르니우치 주(州) 외곽의 구호물품관리센터에서 만난 보흐단 코발리크 부지사는 "한국은 끊임없이 군사적 위협을 받으면서도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통합하고 국가를 발전시킨 본보기"라며 "우리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나라를 발전시켜야 하지만, 언제든 우리를 공격하려는 적이 있다"며 "한국과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이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보흐단 코발리크 체르니우치 주(州) 부지사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과거 비슷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2019년 3월 대선 후보였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선거 유세 중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묻는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한국은 이웃에 독재국가가 있더라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으며 강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좋은 본보기"라고 답했다.
취재 중 만난 일반 우크라이나 시민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도 작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2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러시아에 맞서 결사 항전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지금도 수도 키이우를 지키고 있다.
이는 지난해 8월 허망하게 수도 카불을 탈레반에게 내주고 외국으로 도망간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대비되며 서방에 강한 인상을 줬다.
"세계인이 나서야"…반전 시위 호소하는 우크라 대통령 |
전선의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서방이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을 들고 러시아군의 탱크에 맞서고 있다.
자신들의 도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서방은 더 많은 무기와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고 내가 먼저 행동해야 남도 나를 돕는다는 점을 우크라이나가 입증한 셈이다.
이는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중국·러시아·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북한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은 7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한국이 강대국 간 갈등에 휘말릴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1세기에도 국가 규모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를 통해 목격한 만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력과 의지를 갖춰야 할 터다.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겨누는 우크라 병사 |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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