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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자연과학 · 공학 전공자가 법 · 경제학 전공자보다 대우받은 이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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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일에 준비돼 있는가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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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 체제전환 과정에서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데 앞장섰던 엘리트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신진 엘리트로 부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동독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동독이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서 체제전환을 한 것이 아니라 서독에 흡수통합되는 방식으로 체제전환이 이뤄지면서, 통일국가의 주요 직위에 서독 출신 엘리트들이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동독의 기존 엘리트들은 어떻게 됐나



통일국가의 주요 직위에 서독 출신 엘리트들이 진출했다면, 동독의 기존 엘리트들은 통일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됐을까요? 또, 많은 수는 아니더라도 동독 출신으로 통일국가에서 신진 엘리트로 부상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통일부가 2011년 발간한 자료에 근거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동독의 공산당, 즉 사회주의통일당(SED)의 고위 엘리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퇴출되었습니다. 독일 통일이 된 1990년부터 1994년 사이에 동독 출신으로 연방장관이나 주장관에 임명된 사람 가운데 90%가 처음 장관직을 맡게 된 사람이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또, 1990∽1994년 사이에 동독 출신으로 의원직을 맡게 된 사람 가운데 79%가 초선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주요한 직위에 있어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는 얘기입니다.

둘째, 서독 제도가 동독의 여러 분야로 이전되면서 동독 지역의 주요 간부직은 대부분 서독인들로 채워졌습니다. 서독 엘리트들은 서독뿐 아니라 동독 지역에서도 승진의 기회를 갖게 된 반면, 동독 지역의 엘리트들은 중요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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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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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동독 출신으로 신진 엘리트로 등장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볼 때 분야로는 과학기술, 직급으로는 하위 엘리트와 전문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독 공산당(SED)에 충성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과학이나 의학, 기술 등 동독에서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고 전문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분야의 사람들이 신진 엘리트로 등장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통일 뒤 5년이 지난 1995년 당시 동독 출신 신진 엘리트 가운데 자연과학이나 공학 전공자가 44.8%로 가장 많았고, 법학 전공자(1.9%)나 경제학 전공자(7.6%)는 소수였다는 사실이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합니다. 또, 동독의 고위 엘리트들이 대부분 퇴출됐던 만큼, 하위 엘리트 그룹에 속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했던 직책을 기반으로 지위 상승의 이점을 누리게 됐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 활동분야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독에서 공산당(SED)에 가입했는지 여부는 공산당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면, 신진 엘리트로 진입하는데 큰 장애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동독 체제에서 공산당 가입은 누구에게나 출세를 위한 필수 코스였기 때문입니다. 1995년 기준으로 볼 때, 동독 신진 엘리트의 절반 가까이가 구동독 시절 정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그 가운데 과반수는 SED 출신이었습니다.

주요 엘리트 직위에 서독 출신 압도적



1995년 당시 독일 엘리트 중 동서독인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트를 어떤 사람들로 규정할 것이냐는 데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통일부가 베를린 자유대학에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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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듯 연방기관은 물론 동독 지역의 지방행정 기관이나 기타 엘리트 그룹에서도 서독 출신은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독 출신 엘리트의 비율은 동독 주의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낮은 상태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1990년 이후 20년 간 동독 출신 연방장관 비율은 13%를 넘어선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통일 독일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서독 출신 엘리트들이 주요 핵심 자리를 차지하면서, 동독에서는 ‘식민지화’ 됐다는 감정이나 ‘2등 시민’이라는 열등의식이 확산됐고 이는 사회통합에 중요한 장애로 작용했습니다. 동독 체제를 서독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서독 출신 엘리트들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주요 핵심 지위에 서독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동독인들의 출세 욕구와 희망을 꺾어버림으로써 통일국가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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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초급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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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출신 엘리트 등용 상한선 필요



남북의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가정할 경우 남한 체제가 통일국가의 기본적인 표준이 될 것입니다. 북한 체제를 남한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통일국가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남한 출신 엘리트들이 주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 출신 인사들의 활용을 과도하게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주요 직위에서 북한 출신 인사들이 활동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북한 출신 인사들의 사회적 출세 욕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버림으로써 남북 통합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일국가가 북한 지역 사람들에게도 미래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 지역에서의 주요 직위에는 북한 출신들을 등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남북 통합작업을 위해 남한 사람들의 역할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남한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의 상한선을 정해 그 이상으로는 남한 출신 인사가 등용되지 못하게 하고, 추가적으로 남한 출신 인사가 필요할 경우 남북 간 인사교류를 통해 남한 인사들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 지역에서의 남한 출신 인사 등용 비율 상한선을 20%로 하고 남북 간 인사교류 비율을 20%로 하면, 북한 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남한 사람들의 비율이 최대 40%가 될 것입니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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