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보선 이어 선거 고비 때마다 꺼냈지만 진정성은 ‘반신반의’
후세대에 물려줄 586의 유산을 고민하는 게 용퇴론의 본질 돼야
586그룹은 민주화운동의 성취를 자산 삼아 20년 넘도록 정치권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왔다. 대학생 시절 전대협 깃발 아래 뭉쳤던 이들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발탁돼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1월 25일 오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송 대표는 “정치교체를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586세대가 기득권이 됐다는 당 내외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며 “선배가 된 우리는 이제 다시 광야로 나설 때다. 자기 지역구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도전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의 불출마 선언 직후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는 지역구 4선 연임 금지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정치개혁 관련 7개 법안을 발의했다.
송 대표의 ‘결단’으로 1999년 정치권에 등장해 주류를 이뤘던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퇴진이 가시화했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산발적으로만 맴돌았던 ‘586 용퇴론’이 정치권, 특히 민주당에서 화두가 됐다. ‘83학번’인 김종민 의원이 용퇴론에 불을 붙였다. 김 의원은 1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386 정치가 민주화 운동의 열망을 안고 정치에 뛰어든 지 30년”이라며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면 민생이 좋아지는 게 근대 시민혁명 이후 200년 역사의 예외 없는 법칙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라고 자성했다.
이어 “정권교체 민심의 뿌리는 정치교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민주당은 이 민심에 대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586 용퇴론에 대해 그는 “정치의 신진대사를 위해 의미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임명직 안 하는 것만으로 되나. 이 정치를 바꾸지 못할 거 같으면 그만두고 후배들에게 물려주든지, 정치를 계속하려면 이 정치를 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대선정국 수세 몰린 민주당의 반전카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정치교체를 위한 제도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특히 이번 대선은 민주당 586그룹에게 중요한 분수령이다. 결은 다르지만,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 후보도 넓은 의미에서 86세대의 일원이다. 윤 후보도 1960년생에 83학번인 86세대다. 정치 이벤트의 정점인 대선에서 양강 후보가 모두 86세대라는 점은 여의도 무대에서 주류로 활약했던 586들이 이제 대한민국 정치 기득권의 정점에 섰다는 걸 의미한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586 퇴조 기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여의도 정치의 주류로 세력화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선거(국회의원 선거 5회, 인천시장 선거 1회)에 나와 모두 당선한 송영길 대표는 국회의원 5선(인천시장 미포함)에 이른다. 정치 경력으로 586은 이미 중진그룹에서도 최고참급 세대가 된 셈이다. 정세균(6선), 이해찬(7선)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당내 중진은 대부분 86세대들이다. 민주당의 586그룹 인사는 “이제 남은 건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대통령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번 대선은 586그룹이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는 의미다. 대선 캠페인의 쌍두마차인 송영길 당 대표와 우상호 중앙선대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586그룹의 대표 격이다. 캠프 주요 직책에도 586이 넓게 포진해 있다. 오영훈(제주대 87학번) 후보 비서실장, 서영교(이화여대 83학번) 총괄상황실장, 김영진(중앙대 86학번) 총무본부장, 이원욱(고려대 82학번) 조직본부장 등이 있다.
그래서 586 용퇴론은 배수진을 치고 선 민주당 586그룹의 국면전환용 카드 성격이 짙다. 대선과 총선 등 중요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지도부와 주류 계파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났던 과거 관행에 비춰볼 때 만약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당내에서 불거질 쇄신론의 화살이 586그룹을 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 따라 정치 쇄신 위한 용퇴 요구 커질 수도
민주당의 586 용퇴론은 지난해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참패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출되면서 거론됐다. / 사진:오종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대선에서 승리했을 경우엔 어떨까. 민주당의 원외 전략통 인사는 “대선 승리가 586의 정치 생명을 연장해주긴 하겠지만, 용퇴론을 완전히 잠재우진 못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2002년 대선 승리 후 민주당 주류와 ‘386(당시의 86그룹)’의 운명이 교차했던 상황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당 주류였던 동교동계와 결별했다. 당내에서 비주류였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국정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00년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386그룹이 대거 청와대에 입성해 국정에 참여하고, 여의도에서 쇄신바람을 일으키면서 노 전 대통령을 엄호했다.
586을 대체할 이재명의 친위 그룹은 70년대생, 90년대 학번, 즉 ‘한총련 세대’가 우선 거론된다.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자주·민주·통일을 기치로 내걸고 199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1996년 연세대 사태로 폭력성이 부각되고, 이어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촉발한 주사파(주체사상파) 논쟁이 확산하면서 1998년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이적단체로 낙인찍혔다. 당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한총련 활동과 관련해 59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 중 한총련 대의원(각 대학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학생회장)이 절반을 차지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 한총련 합법화와 처벌을 받은 대의원들의 사면·복권 논의가 이뤄졌지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정치에 입문한 한총련 세대는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한 채 20여 년간 비주류로 머물러 왔다. 학생운동 선배인 586그룹이 전대협 활동을 정치 입문의 필수 경력으로 인정받았던 것과 정반대다. 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활동 중인 한총련 세대 A씨는 “학생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한 586 선배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한총련 후배들은 숨죽인 채 조연으로 살아왔다. 무대 밖에 있는 후배들의 명예회복에는 소홀했던 것에 대한 서운함이 깊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
선거 때만 고개 드는 용퇴론, 진정성 의심받아
민주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586세대와 달리 전대협을 계승한 한총련 세대는 이적단체라는 낙인 속에 20여 년간 비주류로 여의도 주변을 맴돌았다. 2003년 7월 2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 및 합법화 촉구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모의감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웃사이더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재명 후보가 한총련 세대를 점찍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한총련 지도부 출신 영입에 남다른 공을 기울였다. 한총련 1기 의장 김재용 전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정책공약수석으로 기용한 것을 비롯해 강위원(5기 의장), 정의찬(남총련 5기 의장), 윤용조(부산대 총학생회장) 등 한총련 지도부로 활동했던 이들이 이 후보를 보좌했다. 이 후보 자신도 평소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해온 터라 이들이 정치 쇄신의 주역이 되리라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래저래 586그룹은 퇴진 요구에 몰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민주당 586그룹이 스스로 꺼낸 용퇴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류도 만만찮다. 비판적 진영은 대선의 승부처로 꼽히는 중도 확장이 막힌 상황에서 용퇴론이 나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분히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범여권의 정치컨설팅을 하는 40대 이모씨는 “판세가 우세했다면 용퇴론을 스스로 꺼냈겠느냐”고 반문했다.
용퇴론이 이번에 처음 거론된 건 아니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했던 우상호 의원은 2020년 말 출마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 출마는 저의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해 586 용퇴론에 불을 지폈다. 이후 서울·부산 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며 민주당이 참패한 데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3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 대표자로 선출되자 민주당 안에서 586 용퇴론이 점화했다. 이원욱 의원은 지난해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주류인 86세대인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의 벗이었던 2030세대가 떠난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당시 용퇴론은 미풍에 그쳤다. 선거가 끝난 뒤 우 의원의 용퇴 선언에 동참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야무야되는 듯하다가 대선이 임박하자 다시금 용퇴론을 꺼내 들었다. 회심의 승부수로 여겼던 송 대표의 용퇴 선언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소멸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용퇴론을 처음 꺼냈던 우 의원이 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것도 진정성을 의심케한 계기로 작용한다. 게다가 송 대표와 우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동참하는 이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586의 간판 격인 임종석 전 의원을 비롯해 당내 586그룹의 일원 중 누구도 추가로 용퇴론을 거론하는 이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파급력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을 의식했는지 우 의원은 자신과 송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다른 의원들에게 강요나 확산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1월 27일 선대위 총괄본부장으로 임명된 날 그는 “대선에서 지느냐 이기느냐 절체절명의 상황이라서 우리 더불어민주당 구성원 누구도 개인의 거취나 자리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다”라며 “당 대표자가 차기 불출마 선언을 할 정도로 절박하고 절실한 상황이라 오로지 모든 관심은 대선 승리로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상민(충남대 81학번) 의원은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586을 싸잡아서 책임을 물으면 달라지느냐? 책임을 물으려면 옥석을 가려서 책임의 소재와 경중에 따라 물어야 한다”며 “586 용퇴는 어떤 앙갚음이나 화풀이 용도로 쓰는 것밖에 의미가 없다”고 반발했다. 이 의원은 용퇴론이 “두루뭉술하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된 사람들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트러블과 갈등만 크게 유발해 소모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대선 국면에서 용퇴론을 직접 거론했던 김용민(서울대 83학번) 의원도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의원도 586 용퇴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개인의 용퇴 문제가 핵심이 아니고, 제도를 용퇴시키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이라며 발을 빼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쳤다.
━
6·13 지방선거는 586 용퇴론 무풍지대
우상호 의원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하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586 용퇴론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후 민주당 대선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2월 7일 우 의원과 윤호중(가운데), 최강욱(맨 끝)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선대위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586그룹의 이 같은 모호한 태도는 당내에서도 비판에 직면했다. 김우영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종민 의원의 발언을 두고 “이런 걸 요설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행동하지 않는 구두선의 정치는 배반형”이라고 비판했다. 82년생인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586 선배님! 말을 꺼내셨으면 실행하셔야죠! 이런 정치 물려주실 겁니까”라고 직격했다. 앞서 이 최고위원은 송 대표의 불출마 선언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송영길 대표님의 결단을 지지한다. 민주당의 혁신은 대한민국 대전환 앞에 필수 요소”라며 용퇴론을 환영했다. 그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 시절에도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에게 용퇴를 요구한 적이 있다.
대선 직후인 6월 13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오히려 586들의 각축장이 될 분위기다. 주요 지역에 민주당 586그룹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는 염태영(서울대 80학번) 수원특례시장과 5선인 안민석(서울대 82학번) 의원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강원도지사에는 이광재(연세대 83학번) 의원과 김우영(성균관대 88학번)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광주시장에는 강기정(전남대 82학번) 전 의원이 후보군에 올라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586 용퇴론은 여의도 정치용”이라는 뼈 있는 농담도 나온다.
대선 이후 586그룹이 순순히 용퇴론에 응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기든 지든 용퇴론에 직면할 것은 분명하겠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을 거란 전망이다. 우선 국민의힘이 대선에 승리할 경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의 칼날을 들이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민주당이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72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의회 권력에 의존하는 것뿐이다. 정권과 대립이 격화할 경우 용퇴론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용퇴를 논하기엔 국회의원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용퇴론이 재점화하더라도 그 시기는 2024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 점쳐진다. 민주당이 입법 발의한 ‘동일지역구 국회의원 연속 3선 초과 금지 제도화’에 국민의힘이 호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선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설령 민주당 내에서 원칙으로 자리 잡더라도 지역구를 바꿔서 출마하는 식으로 우회할 수도 있다.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지금은 대선 국면이어서 드러내지 못하지만, 정치 생명이 좌우된 일인데 현역 의원들이 순순히 기득권을 양보할 거란 생각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586그룹 안에서도 불만이 감지된다. 개인의 정치활동 자유를 집단으로 묶으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란 지적이 우선 나온다. 원외에서 활동하는 민주당의 한 86세대 인사는 586 용퇴론을 ‘전대협 문화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설명이다. “전대협 세대는 학생운동을 통해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연대의식, 조직화, 집단적 규율 문화가 강하다. 몇 사람의 불출마 결정을 586그룹 전체의 결심으로 확대하려는 발상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이다.”
586그룹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누가 대표성을 갖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586은 넓게 보면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60년대생을 의미한다. 더 넓히면 대학생 경험과 상관없이 60년대에 태어난 전후 세대를 통칭하기도 한다. 정치적 의미로는 86세대를, 민주당으로 범위를 좁히면 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전대협 세대’를 지칭한다. 범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용퇴 대상이 달라진다.
━
“집단적 규율 문화에 익숙한 ‘전대협’식 발상” 지적도
586 용퇴론이 다분히 인기영합적인 의제라는 지적도 있다. 586그룹이 20여 년에 걸쳐 사회와 정치권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긴 했지만, 나이로는 아직 50대에 불과하다. 여전히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이 있는데 마치 퇴물로 인식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86세대로 시민운동계에 몸담고 있는 한 활동가는 “586에 대한 반감은 청년들의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취업, 내 집 마련, 결혼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청년들의 눈에는 젊은 시절부터 고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리며 큰 어려움 없이 사회 기반을 다진 586의 성장 과정이 불평등하다고 비치는 거다. 지금의 사회 구조적 문제를 온전히 586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변명의 여지가 있다 해도 586의 퇴조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이견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세대교체론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시기가 대선 직후냐 아니냐의 시차만 있을 뿐이다. 청년세대의 기성세대 용퇴 요구는 기득권 교체기에 늘 반복돼왔다. 지금의 586들이 사회 변혁의 주체로 등장했던 시기도 2030 청년 시절이었다는 걸 돌아보면 장년층의 문턱에 선 그들이 용퇴론에 직면한 건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퇴론을 단순히 세대 간 권력 다툼으로 비화할 게 아니라 586이 후세대에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이냐는 논의로 발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86 이전의 산업화 세대가 고성장의 풍요를 물려줬듯이 제도의 민주화를 쟁취해낸 586이 후세대에 물려줄 유산을 고민해야 할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캠프에서 활동하는 ‘MZ세대’ B씨의 말이다. “민주화는 586의 훈장이 아니다. 청년들은 586의 학생운동 시절 낭만과 무용담에 관심 없다. 그렇게 얻은 민주화로 더 풍요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아니면 그 역할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라는 것, 용퇴론의 본질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