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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없는 사회에서 실업 있는 사회로, 실업이 준 충격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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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일에 준비돼 있는가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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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업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모든 사람의 일자리를 배치해주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북한이나 과거 동독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학생들은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국가가 배치해주는 일자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는 잠재 실업 숨어 있어



표면적으로는 완전 고용 상태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과연 실업이 없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는 모두에게 일자리를 배치하기 위해 적정 수준 이상의 인력을 배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상의 잠재 실업자가 숨어 있는 셈인데,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하게 되면 이러한 잠재 실업자는 수면 위의 실업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동독의 경우도 흡수통일을 통해 서독 체제로 재편되면서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습니다. 동독 기업들은 비효율적인 인력 고용으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의 경영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과잉 고용 인력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지난 글(▶ 통일 되면 북한 기업 모두 청산해야 할까?…더 큰 부작용 부른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통일독일 정부가 동독 기업들을 서독 기업에 매각하거나 청산하는 방식의 사유화를 진행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의한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서독은 이러한 실업자에 대한 구제책으로 사회보장정책을 활용했습니다. 실업자에 대해서는 실업수당 지급과 함께 일자리를 알선하고, 연금이나 노동시장 보조비 지급 등을 통해 실업의 충격을 완화하려 했습니다. 독일 통일에서 도로, 철도 같은 인프라 재건 비용보다 사회보장비에 들어간 돈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통일독일 정부가 동독인들의 불안한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부담했음을 알게 합니다.

동독인들, 실업 충격 크게 받아



하지만, 통일독일 정부의 이러한 노력들이 동독인들의 실업 충격을 효과적으로 완화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독 시절 실업이라는 개념조차 갖고 살지 않았던 동독인들은 갑자기 실업이라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상실한 뒤 고용청이나 사회복지과에 가서 도움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동독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실업수당이나 사회보장제도의 지원을 받게 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동독인들이 실업에 대해 느끼는 충격이 컸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일반적 시스템에서 기인한 측면도 큽니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체제입니다. 의식주와 일자리 등 모든 것을 국가가 제공해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개인은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뿐 스스로 결정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체제에서 평생을 살다가 스스로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선택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자, 동독인들은 스스로 실업수당을 타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녀야 하는 처지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실업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사회주의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큰 정신적 고통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실업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복지 정책을 실행한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런 제도의 혜택을 보는 것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할 때, 지난 글(▶ 통일 되면 북한 기업 모두 청산해야 할까?…더 큰 부작용 부른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 지역의 실업을 줄여야 하지만,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실업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입니다.

직업의 유무는 통일 만족도 평가에 중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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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 이후 이뤄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직업의 유무가 통일에 대한 평가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업이 있어 적절한 보수를 받아 삶을 꾸릴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또, 자신을 어떤 계층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에서도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중산층 또는 중산층 내 상위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직업이 없는 경우 빈곤층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도 직업과 경제적 수준은 중요한 판단기준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동독 지역 주민들에게 삶에 대한 만족도를 판단하는 비교 대상은 과거의 삶이 아니라 현재 다른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통일로 인해 과거보다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현재 다른 사람들의 생활 수준보다 내가 뒤떨어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불만족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통일 이후 국가가 아무리 기초적인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한다 해도, 적절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마련해주는 것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북 통합 시에도 가급적 실업 줄일 방안 고안해야



남북 통일 시에도 통합정책을 펴나가는 데 있어 북한 지역에서 가급적 실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북한 지역 재편 과정에서 실업이 발생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당연시하는 독일식의 기업 사유화는 지양되어야 하며, 불가피하게 발생한 실업자에게는 다른 일자리를 바로 알선하는 고용 알선 시스템에 주력해야 합니다. 통일 초기 북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노동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은 인프라 건설 현장인 만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과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 수요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고안해야 합니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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