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때 군 검찰관’ 김이수 전 재판관의 기록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 검찰관이었던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당시 검시 과정에서 기록한 수첩. 사진 5·18진상규명조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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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8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계엄군에 살해된 뒤 암매장됐었다’는 군 검찰관의 기록을 확보했다. 이 기록은 당시 군 검찰 검시조사관이던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17일 5·18 조사위에 따르면 5·18 당시 사망자인 광주상고 2학년 이성귀씨의 사망 과정을 조사하던 중 ‘전대 뒷산 암(暗)매장 상고생 2년 이성귀’라고 기록된 검시 참여 검찰관의 수첩 속 메모를 확보했다.
암매장 메모는 80년 5월 28일 광주 상무대에서 이씨의 시신 검시 때 군 검찰관으로 참석한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작성한 것이다. 상무대는 5·18 당시 군 법정과 헌병대가 있었고 계엄군에 붙잡힌 시민들이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한 곳이다.
김 전 재판관은 이씨의 사인에 대해 ‘두부 총상에 의한 뇌손상 M16 열상’이라고 기록했다. 이씨의 광주지검 검시조서에 남은 ‘두개골 관통 총상’과 사인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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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재판관 “암매장 등 특이사항 별도 메모”
2017년 6월7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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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18 조사위에 자신의 수첩을 전달하면서 “사망자들의 검시에 참관하면서 암매장 등 특이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별도 메모를 했었다”며 기록을 남긴 이유를 설명했다.
이씨는 광주시교육청이 파악한 5·18 당시 희생된 광주 16개교 18명 학생 중 1명이다. 이씨의 시신은 현재 국립5·18민주묘역에 안장돼 있어 80년 5월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암매장 의혹은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사위가 지난해 10월 5·18 당시 군 검찰관이었던 김 전 재판관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암매장됐다는 단서를 확보하면서 전남대 교정에 암매장됐는지에 대한 집중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위는 이씨가 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에게 총기를 난사할 당시 전남대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재판관의 메모를 토대로 이씨 유가족과 당시 전남대 직원들의 진술 등을 재확인한 결과다. 80년 당시 이씨 시신은 숨진 지 하루 뒤인 5월 22일 전남대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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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대검 찔린 시민 목격” 증언도
2017년 11월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에 의해 시신이 암매장 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유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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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재판관은 17일 중앙일보에 “5·18 조사위가 확보한 암매장 기록은 내가 작성한 것이 맞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2012년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군 검찰관 이력에 대해 “상무대에 많은 시신이 있어 검시를 했는데 대검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5·18 당시 검시관이 공식 석상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직접 증언한 것은 김 전 헌법재판관이 처음이었다. 5·18 조사위는 김 전 헌법재판관이 제공한 수첩 속 메모 또한 80년 당시 계엄군의 암매장 실태를 밝혀낼 단서로 보고 있다.
조사위는 “공수여단 장병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성귀씨 사망 당시 전남대 주변 상황과 사망자의 인상착의 등 나이, 복장 등 특징점을 검증 조사할 것”이라며 “당시 전남대 교정 안에서 가(암)매장으로 발견된 시신과 이성귀씨가 동일한 피해자인지 여부도 최종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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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에서 암매장 있었다” 증언도
전남대학교 정문 앞 5·18 사적지 비석. 프리랜서 장정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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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당시 전남대 교정의 암매장 증언은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5·18 당시 계엄군의 암매장을 추적해 온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은 “전남대에서 시신을 찾았다는 시신 인수서는 2장”이라며 “당시 전남대 학생처장은 암매장된 학생 1명의 시신을 파냈었고 광주상고 학생으로 기억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80년 5월 이씨와 마지막으로 동행했던 친구를 만나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 있었고, 계엄군이 갑자기 총을 쏜 뒤 이씨와 헤어져 연락이 끊겼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때문에 전남도청 앞에 있었다는 이씨가 전남대에 암매장된 과정에 대해서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전 유족회장의 설명이다.
정 전 유족회장은 “전남대로 들어온 시신을 군 의무관이 ‘공대 뒷산에 묻으라’고 지시했다는 군인들의 증언도 있었다”며 “당시 전남대에서 나온 암매장 시신은 ‘타박사’로 기록됐기 때문에 사인 등에 대한 재검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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