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디지소닉 음향연구소에서 만난 김지헌 대표. 디지소닉은 ‘초실감 입체음향 솔루션’을 개발해 세계최대 가전 전시회인 2022년 CES에서 2개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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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좌우는 물론 머리 위, 사선 방향, 발밑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속’에서 소리를 인지한다. 하지만 이어폰을 끼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양쪽에서 다른 소리가 나는 ‘스테레오’기술이 발전해 입체감이 있다지만, 모든 소리가 좌우 귀 옆에서 나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만약 TV를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도 맨 귀로 듣는 것처럼 360° 공간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게임을 하는데 머리 위로 적의 헬기가 치솟고, 뒤에선 총소리가 들려온다. 아래에선 좀비가 기어오는 소리도 감지된다. 손에 땀이 나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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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신기원 여는 기술” 극찬
디지소닉은 이런 3차원 공간음향을 구현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다. 음향 엔지니어인 김지헌 대표가 2015년 세웠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구글에 오디오 기술을 수출하는 기업이다. 지난 2019년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기술담당 최고임원은 디지소닉 사운드를 듣고 “이 사운드에 비하면 돌비 사운드는 모노(스테레오 이전 시대의 기술)다. 신기원을 여는 기술”이라며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딕 쿡 월트디즈니 전 회장이 화상으로 디지소닉 기술을 체험하고 즉시 투자를 결정해 주주가 됐다. 이 밖에 가수 비욘세의 음악 프로듀서이자 그래미상 수상자인 토니 마세라티, K팝 작곡가 김형석 프로듀서도 각각 사외·사내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에서 한 관람객이 디지소닉의 3D 입체 오디오 솔루션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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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건 아래 방향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어폰을 끼고 있을 뿐인데 무릎 언저리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보게 된 것이다. 애플·돌비 등 최고 음향기업들도 머리 위나 앞·뒤 소리까지는 전달할 수 있지만, 허리를 기준으로 아래에서 나는 소리를 구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디지소닉은 기존 ‘머리전달함수(HRTF, 녹음된 소리와 사람이 듣는 소리의 차이를 없애는 알고리즘)’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이 한계를 극복했다.
동영상 다음엔 어떤 시대 올까
지난 8일 서울 논현동 디지소닉의 음향연구소에서 만난 김지헌 대표는 “요즘 음질은 다 좋다. 이제 소리는 단순히 좋은 게 아니라 경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음향시장은 약 220조원으로 이미 메모리 반도체 시장(약 200조원)보다 커졌다. 최근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메타버스를 비롯해 게임, 온라인 공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으로 꼽히는 실감형 콘텐트의 핵심이 소리다. 하지만 한국은 원천기술이 없어 음향의 99%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가 개발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컴투버스' 시연 이미지. [사진 컴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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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인간의 소통체계는 목소리→문자→사진→동영상 순으로 발전해 왔다”며 “그 다음은 ‘경험’을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시대에 경험의 질을 좌우할 몰입감을 높이려면 비주얼(시각) 다음으로 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구들과 메타버스 공원에 놀러 간 게 진짜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려면 내 움직임에 따라 모든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와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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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 이어폰으로 3차원 소리 듣는다
사실 3차원 소리를 재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방 곳곳에 고성능 스피커를 달아두면 된다. 하지만 웬만해선 이런 고가의 장비를 마련하긴 어렵다. 반면 디지소닉이 개발한 실시간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인 스테레오 음향이나 음악을 3차원 공간음향으로 바꿔준다. 김 대표 표현에 따르면 “3억원 짜리 스피커 음향을 3만원 짜리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고, BTS(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실제 공연장 한복판에서 즐기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7월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마련된 전시회장에서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 무대를 가상현실(VR) 기기로 관람하고 있다. 디지소닉은 VR 콘텐트에 최적화한 오디오를 개발해 실감을 더했다. [사진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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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음악 및 소리를 3차원 공간 오디오로 변환해주는 디지소닉의 'EX-3D Spatializer' 솔루션을 적용한 앱 화면. [사진 디지소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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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소닉은 이를 위해 스마트폰 등에 저장된 음악을 3차원 오디오로 변환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애즈이프(as if)’를 선보인다. 오는 3~6월 시험기간을 거쳐 일반에 출시할 계획이다. 저작권 등의 문제로 아직 스트리밍 음악은 변환이 어렵지만 유튜브 영상에 실린 소리나 음악은 가능하다. 향후 자체 음원과 콘텐트 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음향 분야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구상 중이다. 바람소리, 냇물소리, 화산의 마그마 소리 등 김 대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녹음한 고유 음원만 12만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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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도움되는 기술이 목표”
또 다른 관심 분야는 건강 분야다. 실제 이어폰으로 장시간 큰 음량을 들으면 고막에 압박감을 줘 난청을 일으키고, 소리의 위치가 머릿속에 맴돌아 뇌의 피로도 높아진다.
김 대표는 “원래 음향 기술은 시각 장애인들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된 부분이 많다”며 “현대인들의 힐링과 치유에도 소리 기술이 큰 몫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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