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정의당 심상정·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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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거대양당과 제3지대 후보 간 단일화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 대선 경선에서 이뤄진 단일화 사례를 돌이켜보면 '각자도생'의 길은 안타까움을 남겼지만 하나로 뭉쳤을 땐 유리한 결과를 나타냈다.
사진은 13대 대선 당시 후보로 출마한 (왼쪽부터) 노태우(민주정의당), 김영삼(통일민주당), 김대중(평화민주당) 후보 포스터. [사진 제공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역사관] |
'후보 단일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건 지난 1987년 제13대 대선부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민정당 후보를 차기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면서 대한민국은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를 손에 거머쥐게 됐다.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해 야당과 국민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통해 '국민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야권에선 김영삼 통민당·김대중 평민당 후보가 출마했지만, 노 후보를 꺾기 위해선 반드시 '단일화'가 선행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두 야권 후보는 각자 출마했다. 재야 운동권 세력들도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후보 단일화(후단)', 김영삼 후보보다 진보적인 김대중을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비지)', 김영삼·김대중 후보 모두를 지지하지 않고 아예 진보 세력의 후보를 따로 내자는 '독자후보추대(독후)'로 나뉘기도 했다.
대선결과, 국민들은 노태우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노태우(36.64%), 김영삼(28.03%), 김대중(27.04%), 김종필(8.06%)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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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제14대 대선에선 김영삼 후보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김종필 후보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대선 압승을 위한 물밑 작업을 마친 김영삼 후보와는 달리 야권에서는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야권의 김대중 후보는 33%, 정주영 후보는 16%, 박찬종 후보는 6%로 41%를 득표한 김영삼 후보에게 패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왼쪽부터) 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토론을 시작하기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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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 때도 야권 단일화는 큰 화두였다. 두 번의 대선에서 패한 김대중 후보는 단일화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결국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방안으로 띄우기도 한 'DJP 연합'은 단일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후보에게 내각제 개헌, 실세총리, 내각 지분 절반 보장 등을 약속하는 등 권력의 절반을 내주는 '통 큰 단일화'를 추진했다. 반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높은 지지율에 당선되겠다는 믿음으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단일화 요구를 외면했다. 그 결과 김대중 후보(40.27%)에게 1.53%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2002년 12월 대선후보 3차 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권영길, 이회창, 노무현 후보.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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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의 단일화는 그야말로 '반전 드라마'였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이회창·정몽준 후보에 뒤지는 3등 수준이었다.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 후보도 '단일화'가 필요했다. 당시 지지율 2등이던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노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쪽으로 단일화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노 후보에겐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받아들였고, 전문 기관 두곳에서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 한 곳에선 무효가 나왔고 다른 한 쪽에선 노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결국 노 후보로 후보 단일화가 성사됐고, 이 기세를 몰아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왼쪽부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2012년 18대 대선에선 껄끄러운 단일화가 이뤄졌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논의 중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안철수 후보가 도중 사퇴를 선언해 문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국민들은 결국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단일화가 대선 승리의 조건이 아닌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정의당 심상정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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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20대 대선에선 단일화가 이루어질까? 단일화 카드를 쥐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끝내 완주를 할 것인가. 아니면 거대양당 후보 중 어느 한 쪽과 손을 잡을 것인가.
이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11일 매경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안 후보가 단일화할 확률은 높아졌고, 그 선택은 윤 후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평론가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한 때 15% 전후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내려왔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득표율이 15%가 넘으면 선거비 100% 보존되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 문제의 고민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15% 이상 넘으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면서 "하지만 (지지율이) 꺾여서 내려오는 추세니 단일화 필요성이 더 높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가 윤 후보와 단일화 할 가능성이 왜 높은 것인지 묻자 "안 후보 입장에서는 과거 진보진영하고 단일화하고 힘을 실어줬지만 그쪽에서 입지, 역할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점점 중도보수 쪽으로 옮겨오고 있고, 최종 종착점은 중도보수를 합치고 보수 쪽으로 몸을 옮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합당하는 것이 안 후보의 대장정이 마무리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덕호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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