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유작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사물로 바꿔서는 안 되며 우리는 사물의 주인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더 많이 느끼고 관찰하며 더 생산적이고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시대 흐름 탓인가. 저자의 수십 년 전 외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전에 없이 우수하고 멋진 사물을 생산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그 창조물은 왠지 낯설고 위협적이고, 이에 따라 삶 또한 공허해진다.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제시하며 인간을 소외시키는 세상이 되고, 인간은 무기력하게 복종한다. 현대인의 내면에는 자기뿐 아니라 타인, 세계, 심지어 자신이 만든 사물조차 바꾸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깊이 자리한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대표작 '사랑의 기술'이 말해주듯이 명실상부한 사랑의 철학자였다. 신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기술'이 말하는 관계의 사랑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이고 모든 사람의 핵심인 '삶에 대한 사랑'을 들여다본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발표작인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8년을 함께한 조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라이너 풍크 박사가 유작을 엮었다.
프롬은 삶을 사랑하는 능력의 상실을 현대인의 핵심 문제로 꼽는다. 그리고 이를 경제, 사회, 정치, 노동과 연계해 성찰한다.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살아 있음의 철학이랄까. 나르시시즘, 이기주의, 결핍, 소외 등 심리적·정신적 관점부터 대량생산, 기술 맹신, 경제적 과잉 등 사회경제적 조건까지 우리가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이유를 탐색하고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인간에게 자신을 훈련하고 타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다채로운 문화 서비스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인은 감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기며 지성과 감정을 분리한 채 통합된 인격을 가꾸지 못한다. 그리고 팀워크와 소속감이라는 명목으로 타인과 구분되기를 두려워하며, 욕망을 끊임없는 소비로 채우려다가 공허함에 시달린다.
프롬은 칼뱅, 칸트, 베버, 프로이트, 니체 등 철학자들의 논의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자신의 자기애 철학을 풀어낸다. 특히, 자신을 향한 사랑과 타인을 향한 사랑이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이론을 비판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삶을 충만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전함과 유일함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며, 이는 전체 인간존재에 대한 존중과 이해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기본소득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관점을 넘어 심리적 관점으로 조명한다. 경제적 과잉의 시대에 가능해진 기본소득으로 인간은 생계 유지의 위협에서 해방될 자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산업사회는 인간을 소비하는 인간, 즉 '호모 컨수멘스(homo consumens)'로 만들어버렸다. 광고에 자극받고 조종당하며 만족을 모른 채 수동화하면서 끝없는 소비로 공허한 마음을 보상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으로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지금의 '최대 소비 시스템'을 공공 욕구에 맞춘 '최적 소비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대 소비를 최적 소비로 이행하려면 생명, 생산성, 개인주의 등 인문주의적 가치를 부활시켜 물질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혜경 옮김. 김영사 펴냄. 260쪽. 1만5천800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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