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美日 철강관세 분쟁 타결
美, EU이어 日과도 철강 관세 철폐
韓, 연간 268만톤 수출제한에 막혀
EU·日, 가격경쟁력 앞세워 파상공세 우려
기업들 "정부 빨리 협상나서 할당제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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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강업계의 대미(對美)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연이어 미국과 철강 관세 분쟁을 타결했지만 한국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다. 한국 철강업체들은 지난해 세계적인 철강 호황에도 할당제(쿼터)에 막혀 미국 시장에서 추가 수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던 만큼 한국이 반중 연대에 조속히 합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오는 4월부터 일본산 철강 제품에 매기던 관세를 철폐한다. 연간 기준으로 미국에 수출되는 일본산 철강 제품 125만 톤에 대해 적용되는 25% 관세를 철폐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25% 관세를 매기는 자율할당관세(TRQ)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 10월 EU도 비슷한 조건으로 미국과 철강 관세 분쟁을 타결했다.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다. 자국의 통상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량 제한, 고율 관세 부과 등을 취할 수 있는 무역 제재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국·일본·EU 등에 중국산 철강을 대량 수입해 우회 수출하고 있다며 무역확장법 232조의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당시 한국은 25%의 고관세를 부과받는 대신 직전 3년 평균 수출량의 70%(268만 톤)에 해당하는 쿼터를 두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15~2017년 연평균 383만 톤에 달하던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출량은 지난해 269만 톤대로 축소됐다.
EU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철강 관세 분쟁을 타결함으로써 국내 철강업계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EU는 매년 330만 톤의 철강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되 이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는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기존의 고율 관세 조치와 무관하게 관세가 면제됐던 100만 톤까지 포함하면 연간 430만 톤의 철강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간 268만 톤 수출 제한 벽에 가로막히게 됐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경우 EU와 일본 철강업체들은 추가 수출이 가능한데 국내 업체들은 추가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도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에 추가 수출할 여력이 있었지만 무역확장법 232조 제재에 막혀 철강 수출을 못했다. 지난해 전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책으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면서 글로벌 철강 수요는 전년 대비 4.5% 늘어난 18억 6000만 톤에 달했다.
수출 제한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산 철강 제품의 미국 내 시장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우세한 철강 가격 경쟁력을 무기 삼아 EU와 일본 철강업체가 미국 시장 지배력을 높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뒤늦게 한국이 미국과 철강 관세 분쟁을 타결해 추가 수출 물량을 확보해도 미리 시장을 선점한 EU와 일본 업체의 텃세에 판로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내 철강업체들에 주요한 수출국이다. 중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수출국으로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철강 수출량에서 대미 수출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9.9%에 달한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 바이든 미 정부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한 만큼 포스트 코로나19가 도래할 경우 미국 내 철강 수요가 폭증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조속한 협상 타결로 할당량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조속한 쿼터 해제를 바라지만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 설 연휴에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 관련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당장은 어렵다’였다.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세를 부과받은 국가들인 EU와 일본이 협상을 타결하고 영국도 진행 중인 만큼, 쿼터를 받아들인 우리 차례는 그 다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연대에 한국이 동참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지연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철강 관세 협상을 타결한 국가는 미국의 대중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곳들”이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점도 관세 타결 지연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에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참여를 조건으로 협상 재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주도의 IPEF는 관세 철폐를 목적으로 한 전통적인 무역협정과 달리 공급망 협력, 대(對)중국 수출 통제, 인공지능(AI) 표준 확립 등을 목표로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IPEF 관련 세부 내용이 나오지 않은 만큼 관련 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종갑 기자 세종=우영탁 기자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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