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잇달아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핀란드화(Finlandization)’를 외교적 해법의 하나로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를 냉전 시기 핀란드처럼 서방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 지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7일(현지시간)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행 비행기 안에서 몇몇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협상 의제 가운데 하나라고 털어놨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원한다”면서 “나토와 러시아가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나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주권이나 유럽 국가들의 안보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 러시아 병력 10만명이 집결해 침공 우려가 고조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이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르몽드는 지난 2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잊혀졌던 ‘핀란드화’가 우크라이나 위기 해법의 하나로 공적 토론의 장에 복귀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중립적인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주장이 국제관계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화는 냉전 시기에 등장한 국제정치학 용어다. 약소국이 자국의 주권을 보장받는 대신 인접한 강대국의 외교정책을 반대하지 않는 외교안보 노선을 가리킨다. 러시아와 134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는 1948년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중립을 표방했다. 초강대국의 위협에 맞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냉철한 현실주의 노선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자발적 눈치보기라는 부정적 해석도 있다. 핀란드는 중립노선을 취함으로써 소련의 침공을 피했으나 소련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서적과 영화를 자체 검열하는 등 일정한 제약을 감수했다.
핀란드화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촉발된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때 미국의 외교전략가들이 위기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2014년 2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은 독립적이고 영토가 분할되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핀란드가 효과적으로 수행했던 것과 비슷한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면서 “핀란드 모델은 우크라이나, 유럽연합(EU), 러시아에 모두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도 같은해 3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핀란드와 비슷한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핀란드는 자국의 독립을 명확히 지키고 여러 부문에서 서방과 협력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제도적 적대를 신중하게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피가로는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의 몇몇 아이디어는 실행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5시간에 걸친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핀란드화를 거론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마크롱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을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옥산나 마카로바는 지난해 12월28일 우크라이나 국영통신 우크린폼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의 유일한 목적은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 공포를 심는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