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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송산리 29호분 벽돌 양나라 사람이 만들었다”···무덤 축조 중국 남조 영향 재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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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송산리 고분군) 29호분 벽돌에서 ‘건업(난징) 사람이 만들었다’고 새겨진 명문(銘文)이 확인됐다. 벽돌무덤 축조가 중국 남조 영향을 받은 것을 재확인하고, 남조 양나라의 기술자들의 참여를 추정하게 해주는 기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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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에서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연구소는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로 해석된다고 했다. 건업(建業)은 양나라(502~557년) 때 수도다. 난징(남경)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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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분 벽돌 명문에 새겨진 ‘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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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문은 반으로 잘려진 연꽃무늬 벽돌의 옆면에 새겨졌다. 연구소는 “이 명문으로 제작자 출신지를 파악할 수 있다. 제작자가 외부인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당시 벽돌과 무덤의 축조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음을 더욱 분명하게 알려준다”고 했다. 연구소는 ‘건업인’은 현재로선 벽돌 제작만 담당한 이로 보인다고 했다.

명문 서체·내용은 6호분 명문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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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분 발견 벽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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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이 함께 자리한다.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도 양나라를 포함한 글자를 새긴 명문 벽돌이 앞서 출토됐다. 연구소는 6호분 명문은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또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 등으로 판독된다고 했다. ‘양(梁)’은 양나라를 가리킨다. 명문 글자 판독과 뜻을 두고 이견이 있는데, 대체로 ‘양나라의 기와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연구소는 “29호분과 6호분 벽돌의 상호 연관성과 관련 여부를 추가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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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백제 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각 무덤 위치.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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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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