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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Tech & Law] 망자(忘者)의 인터넷 포털 계정은 상속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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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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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애플은 iOS 15.2 버전을 배포하면서 애플 계정 설정에서 계정 보유자 사망 후 해당 계정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유산 관리자(Legacy Contacts)’를 최대 5명까지 사전에 지정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지정된 유산 관리자는 접근키를 받게 되며, 이를 계정 보유자 사망 후 사망진단서 등 증빙 서류와 함께 애플에 제출하면 메시지, 사진 등 계정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를 내려받거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다. 그동안 애플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수사시기관의 아이폰 잠금해제 요청도 거부해 왔지만, 디지털 유산에 대한 것만큼은 승계를 허용하는 쪽으로 조치한 것이다.

이미 구글은 2013년 4월부터 ‘휴면계정 관리서비스(Inactive Account Manager)’를 도입했다. 이는 이용자가 자신의 계정이 자동으로 휴면계정이 되는 시점을 3개월이나 6개월, 1년 단위로 설정하고, 계정이 휴면상태로 전환된 이후 남아있는 데이터를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송되도록 하거나 완전히 삭제되도록 설정할 수 있는 서비스다.

독일에서는 2018년 7월 12일 디지털 유산의 상속에 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이는 페이스북의 이용자인 자녀가 사망해 부모가 계정접속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였으나, 페이스북이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망자(忘者)와 페이스북과의 이용계약은 채권적 권리로서 사망에 따른 포괄적 재산승계 규정에 따라 상속인에게 상속이 되며, 따라서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계정과 통신내용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아직 플랫폼 정책이나 법원 입장이 분명하지 않으며 법제화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네이버는 회원의 아이디 및 비밀번호와 같은 계정정보를 일신전속적 정보로 보아 유족의 요청이 있는 경우라도 이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유족 등 정당한 권리를 갖는 자가 요청하는 경우 회원탈퇴를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디지털 유산의 처리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디지털 유산이란 사망한 사람이 남긴 디지털 형태의 모든 자료 또는 사망한 이용자가 인터넷 공간에 남긴 부호, 문자, 음성, 음향, 화상, 동영상 등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메일,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 접속 아이디(ID)와 비밀번호 그리고 저장내용을 말하며, 그 외에도 제3자의 공간에 남긴 글, 그림 등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망자가 생존 시 생성한 디지털 정보를 디지털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디지털 유산에는 상속재산에 범주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민법상 상속규정에 따르면 피상속인이 사망하는 순간 피상속인의 재산상의 모든 권리의무는 일신전속적인 것이 아닌 이상 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상 당연히 상속인에게 이전된다. 일신전속성이란 법률에 따라 특정한 자에게만 귀속되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통 인격권, 가족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디지털 유산과 관련해서는 재산권인지 아니면 일신전속권인지에 따라 상속 여부가 결정된다. 다만 포털이나 이메일 계정정보는 일신전속적이기 때문에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지가 문제다. 먼저 이런 식별정보는 인격권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승계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EU, 한국 모두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고 있어 망자의 개인정보보호인 계정정보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상 보호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독일의 판례와 같이 계정 ID 등에 대한 접속권은 망자와 서비스제공업체 간 계약상 권리인 채권으로서 재산에 관한 사항이므로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정보 중 창작성이 있는 경우에는 저작물이 되며, 저작물에 대한 권리인 저작권은 재산권으로서 당연히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계정 내에 일상 생활을 기록한 글과 같이 인격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나 제3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이는 상속재산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디지털 유산에 관한 승계규정 입법이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한편, 망자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접근이 비밀침해를 금지하는 다른 법률과 충돌할 수 있는 점도 이슈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9조에서는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2항에 의하면 전기통신업무 종사자는 통신과 관련하여 알게 된 ‘타인, 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대법원은 물론 독일의 대법원도 상속인은 사망한 피상속인의 법적 지위를 승계하기 때문에 타인이 아니라 본인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있어 피상속인이 가지고 있던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하면 유언과 같이 생전에 본인의 의사에 의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에 서비스 이용계약 체결 시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관한 의사를 설정하고 이후 변경도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제의 미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문제로 인한 정책 미비로 디지털 유산의 상속문제가 법원에 가서 사안별로 해결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의 낭비가 따른다. 또한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하는 경우 지워지지 않은 채 온라인상에 남겨진 사자의 엄청난 디지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사회문제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조속히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법제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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