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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내 저작권료’…레진코믹스 창업자와 법정 다툼서 이긴 17세 데뷔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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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2013년 만 17세의에 웹툰 <나의 보람>으로 데뷔한 작가 A씨의 서울 광진구의 작업실의 지난 25일 모습. 윤기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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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27)는 만 17세에 ‘웹툰작가’ 꿈을 이룰 때까지만 해도 저작권 문제로 법정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거대 웹툰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 레진코믹스의 이사회 의장과 3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미성년자일 때 레진코믹스와 맺은 불공정 계약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A씨는 데뷔작을 연재한 지 9년이 지나서야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A씨를 지난 25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A씨가 2013년 레진코믹스와 맺은 계약이 발단이었다. 웹툰 작가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구상하는 ‘글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그림 작가’로 나뉜다. 한희성 레진코믹스 이사회 의장(당시 레진코믹스 대표)의 제안으로 2013년 레진코믹스에 <나의 보람>을 연재하기 시작한 A씨는 혼자 글작가와 그림작가 역할을 모두 해냈다. 하지만 한 의장은 ‘업계 관행’이라며 연재 계약서의 글 작가에 ‘레진’이라는 이름을 올리고 저작권 수익 15~30%를 떼 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A씨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다.

A씨는 데뷔 5년차쯤 됐을 때 글작가들과 일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글작가들은 A씨에게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이 써진 각본과 캐릭터의 움직임이 대략적으로 그려진 콘티를 주었다. 반면 데뷔작을 연재할 때 한 의장이 한 것은 장르를 정한 것, 캐릭터 이름을 정한 게 전부였다. A씨가 ‘콘티’를 가져가면 의견제시 정도만 했다. 한 의장과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한 A씨는 2018년 12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한 의장을 고소했다.

법정 다툼은 만만치 않았다. 웹툰 업계와 저작권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가진 경찰 수사관이 드물다보니 A씨가 보강 자료를 수차례 제출해야 했다. 반면 한 의장은 경찰 조사 단계부터 대형 로펌 변호사 5명을 선임했다. A씨는 “공판에 가면 항상 한씨 쪽은 바글바글했다. 자료도 이만큼(두 손을 60cm가량 벌리며) 가져와 위축됐다”고 했다. A씨가 증인석에 설 때마다 상대 측 변호인은 ‘당시 웹툰을 혼자 그려낼 능력이 없지 않았느냐’는 식의 인신공격성 질문을 던졌다.

재판 중 황당한 질문도 받았다고 했다. 상대 측 변호인이 ‘혹시 증인은 삼각관계 경험해본 적 있느냐. 우리 피고인은 삼각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웹툰 속 삼각관계의 섬세한 감정선은 경험해본 사람만 쓸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일주일에 6.5일, 하루 평균 11시간 웹툰 작업을 하면서 10~12회 열린 공판에 방청객이자 증인으로 참석했다. 공판 내용을 속기한 뒤 변호인에게 보내 반론을 준비했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신인 작가들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을수 있도록 하는 판례를 남기고 싶다”는 이유였다.

동료 만화가들도 A씨와 연대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A씨에게 변호인을 소개해주고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A씨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작가들도 있었다. 불공정 계약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 때는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도 독자와 작가들이 함께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장에게 지난 11일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약식기소한 500만원의 두 배이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설득력 없는 논거를 제시하며 범행을 부인한 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한 의장은 항소했다. A씨가 말했다. “다들 만화를 좋아해서 불공정 계약에 노출되는 것 같아요. 돈을 받으면서 만화를 그려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니까요. 무기이자, 돈줄이자, 생명줄인 저작권을 작가들이 모두 지킬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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