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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우크라 위기에…‘에너지 3각 딜레마’에 갇힌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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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폐기·석탄 발전 감축 역풍에 에너지 가격 급등
독일,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 전체 25% 차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 시 경제 치명타
에너지 위기에 러시아 경제 제재안도 거부
한국일보

러시아에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 '노드스트림2'의 종착지인 발트해 인근 독일 자스니츠의 항구에 파이프라인이 잔뜩 쌓여 있다. 자스니츠=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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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고조되면서 독일이 에너지 문제로 촉발된 환경, 사회, 안보 분야에서 ‘3각 딜레마(trilemma)’에 빠졌다. 연내 원자력발전소 폐기, 화석 연료 발전소 단계적 감축 등 친환경 정책을 추진해온 독일 정부가 에너지 가격 급등 역풍을 맞은 데 이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상승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위협 등 역내 안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독일 연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69%나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지난달 독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를 기록, 3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높아진 이달, 천연가스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6배 이상 뛰어올랐다. 최근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에서 볼 수 있듯, 유가 상승은 국민들이 동요할 수 있는 커다란 사회 불안 요소다.

독일의 에너지 가격 급등은 에너지정책 전환 이후 가속화했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올해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했다. 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8년까지 ‘탈석탄(석탄 발전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정책을 약속했다.

환경을 위한 정책이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에너지 의존도는 높아졌다. 재생에너지 개발은 더뎠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은 크게 늘었다. 현재 천연가스는 독일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90% 이상이 러시아에서 수입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지자 독일은 아예 러시아와 이어지는 가스관 ‘노드스트림2’를 추가로 설치했다. 지난해 9월 완공된 이 가스관이 가동되면 독일의 천연가스 수입량은 기존의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스타프 그레셀 유럽연합 외교위원회 선임연구원은 “원전과 석탄을 동시에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결정은 독일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완전히 의존하게 만들고,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대응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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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베를린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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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이 됐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로 역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4분기 러시아 최대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천연가스 유럽 수출량을 줄이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4배 이상 치솟았다. 유가 상승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독일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미국 등 동맹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한 경제 제재에 독일이 동참을 주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미국 등이 추진하는 노드스트림2 제재안에 “정치적 논의와 분리돼야 하는 순수 민간 부문 프로젝트”라고 사실상 선을 그었다. 굳건해 보이던 서방의 안보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콘스탄체 스텔젠뮐러 선임연구원은 “독일 정부는 러시아가 싼값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며 “이 환상이 깨지면서 독일은 환경, 사회, 안보 분야에서 '에너지 3각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꼬집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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