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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여성의 신체를 수십 차례 불법 촬영한 남성이 검거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남성의 휴대전화에서 불법 촬영 영상물은 쏟아졌고 공소사실에 대해 자백도 했지만 처벌은 피했다. 확보한 영상물이 증거 능력을 잃어버리고 자백마저 보강할 증거가 사라진 결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0대 남성인 A씨는 2018년 4월 2일 오전 8시 경기도 안산시 내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학생(당시 16세)의 신체를 촬영하는 등 같은해 3월 9일부터 4월 2일까지 여성들의 다리나 치마 속을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이 A씨의 덜미를 잡은 것은 이보다 한 달 전인 3월 10일 여자 화장실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당시 A씨는 B씨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가 불법 촬영을 시도했지만 발각돼 미수에 그쳤다. 이에 경찰은 해당 범행을 혐의사실로 4월 5일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A씨의 휴대전화 2대를 압수한 뒤 증거 분석에 나섰다.
하지만 A씨의 휴대폰에서는 문제가 된 3월 10일의 촬영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경찰은 4월 2일 버스 내 불법 촬영 영상물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동영상을 토대로 A씨를 신문했고 이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A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등 이용 촬영)으로 기소했다. 쉽게 말해 3월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선 뒤 4월 사건으로 기소한 셈이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 파일들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의 내용과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지 않다고 봤다. 증거로 제시된 불법 촬영물이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내 혐의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없는데다 휴대전화에서 증거를 찾아 확보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A씨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발부된 영장은 다른 범죄에 대한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탐색 과정에서 별도의 범죄 혐의 관련 촬영물을 우연히 발견했으면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받았어야 했다"고 구체적으로 꼬집었다. 이어 "경찰은 이들 동영상을 탐색·촬영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참여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A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영상들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조금 달랐지만 무죄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하급심과는 달리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불법 촬영물들이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로는 사용될 수 있다고 봤다. 범행 간격이 짧고 공중이 밀집한 장소에서 불특정 여성을 물색해 촬영하는 등 수법이 동일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동영상을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로 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거 확보 과정에서 A씨의 참여를 배제한 점이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참여권이 보장됐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어 각 동영상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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