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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의선 회장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왜?…칼라일 ‘우군’ 확보, 주주가치 제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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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매각하기로 하면서 이후의 그림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매각을 계기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매경이코노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현대자동차 제공)


▶정의선 부자, 글로비스 지분 매각

▷칼라일, 글로비스 3대 주주로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1월 5일 정의선 회장 부자가 지분 10%를 약 6113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최대주주인 정의선 회장 지분 3.29%와 3대 주주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 6.71%. 인수 주체는 칼라일이 만든 특수목적법인 프로젝트 가디언홀딩스다. 이번 거래를 마무리하면 칼라일그룹은 단숨에 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에 오른다.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가 갑작스레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한 배경은 공정거래법에 맞춰 총수 일가 지분율을 축소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지난해 12월 30일 발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인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초 이 기준이 30%였지만 20%로 강화되면서 총수 일가가 지분 29.9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매각을 통해 총수 일가 지분율을 19.99%로 낮추면서 곧장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히 공정거래법 규제 회피를 넘어 정 회장의 ‘신의 한 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분 매각 방식부터 그렇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 관련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데다 한꺼번에 지분을 칼라일에 넘기면서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 매각 관련 오버행(잠재적 물량 부담) 이슈도 해소시켰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이 수많은 사모펀드 중 칼라일그룹을 꼽은 것을 두고서도 최적의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에 오른 칼라일그룹은 현대차그룹과 사이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회장은 2019년 당시 서울에서 진행된 칼라일 초청 대담에 직접 참여해 경영 비전을 제시하는 등 이규성 칼라일그룹 대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칼라일이 정 회장 ‘우군’ 역할을 하면서 각종 신사업 투자를 지원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칼라일그룹은 단순한 재무적투자자(FI) 역할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면서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적투자자(SI)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매경이코노미

▶지배구조 개편 속도 낼 듯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핵심

이번 지분 매각을 계기로 현대차그룹 숙원 과제인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10대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이런 지배구조를 고수하면 외부 투기자본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구조 해소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2018년 3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모듈·AS(애프터서비스)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현대차그룹 지배회사로 남기는 방식으로 순환출자고리를 끊으려 했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기아, 현대제철,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매입하고, 현대모비스를 현대차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방안이었다. 이를 통해 정의선 회장→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려 했다.

하지만 야심 차게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벽에 가로막혔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라”고 압박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현대차그룹은 고심 끝에 지배구조 개편을 포기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 합병 비율을 조정해 개편안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례로 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을 상장해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은 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이후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이 합병 글로비스에 대해 공개매수에 나서고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 등 대주주가 여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자연스레 순환출자구조 핵심 계열사 현대모비스에 대한 대주주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절실하지만 아직까지 지분율이 0.32%에 그친다. 현대차(2.62%), 기아(1.74%) 지분율도 높지 않다. 이에 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19.99%로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정 회장이 유일하게 최대주주인 회사다.

재계는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2000억여원을 부친 지분 상속 등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 대금으로 활용할 것이라 분석한다. 때마침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만큼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4000억원까지 합하면 6000억원가량 넉넉한 실탄이 마련된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현대엔지니어링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공모를 통해 보유 지분(890만3270주)의 60%(534만1962주)를 매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4000억원 안팎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이 부친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한다. 정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5.33%)과 현대모비스 지분(7.15%) 가치는 4조2000억원 안팎이다. 상속세 최고 세율, 대주주 할증을 적용하면 상속세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합병 시나리오도 솔솔 나온다.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38.6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합병사 지분으로 바뀌고 지분 교환이나 현금화가 한층 수월해진다.

정 회장 지분이 많은 현대차그룹 IT 계열사 현대오토에버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높다. 현대오토에버는 2020년 12월 11일 이사회를 열고 계열사 현대엠엔소프트와 현대오트론을 흡수, 합병했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 IT 인프라 사업을 해왔다. 현대엠엔소프트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현대오트론은 차량용 임베디드 플랫폼 전문업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오토에버 지분은 7.33%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19.99%), 현대엔지니어링(11.72%)에 이어 그룹 내 세 번째로 지분이 많은 계열사다. 현대오토에버 가치가 올라갈수록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의미다. 자율주행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현대오토에버 사업 영역이 IT 서비스에서 모빌리티 테크 분야로 확장돼 성장세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 회장이 직접 사재 2400억원을 털어 지분 20%를 매입한 로봇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가치도 눈여겨봐야 한다. 인수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도 지분 10%를 매입한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할 경우 정 회장 지분 가치뿐 아니라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도 덩달아 높아진다.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현대오토에버, 보스턴다이내믹스 보유 지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도 변수다. 올해는 정 회장이 주도하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3호 (2022.01.19~2022.0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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