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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수첩] 오스템임플란트 사태 본질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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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새해 벽두부터 주식시장을 달군 오스템임플란트(048260) 횡령 사태 후폭풍이 보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인 20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회사 재무팀장 이모(45·구속)씨가 검찰로 넘겨진 가운데, 자본시장에서는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한 활 시위가 사방(四方)을 향해 있다.

앞서 이번 사태는 이씨가 횡령한 돈으로 여러 상장사에 투자하고 손실을 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반도체 장비회사 동진세미켐 주식 1400억원어치를 사들인 ‘파주 슈퍼개미’와 동일 인물로 확인됐다. 또 같은 해 11월 게임회사 엔씨소프트(036570) 주식 3000억원을 매수해 화제가 된 슈퍼개미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책임론이 불거졌고, 금융회사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특정 개인이 수천억원이 넘는 자금으로 여러 상장사 지분을 매수해 대량 보유 공시까지 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금 횡령 여부를 떠나 시장의 이상 거래를 잡아내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장 경찰과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지만, 거래소나 당국도 이번 사태 파급력을 감안할 때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금융감독원은 거래소와 별개로 이씨 주식 거래 내역을 정밀 분석해 불공정거래 혐의를 파악하고 나섰다. 거래소 역시 상장실질심사와 별개로 비슷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지금처럼 이씨가 횡령한 자금이 옮겨 다닌 흔적을 중심으로 책임 소재를 찾는데 시선이 쏠리다 보니 정작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오스템임플란트 사태가 터진 초기까지만 해도 시장 안팎에선 이씨의 주식 거래 내역보다는 직원 한 명이 막대한 자금을 빼돌릴 수 있었다는 점, 회사가 그 사실을 수개월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 냉정히 제도만 두고 보면 동진세미켐은 대량 지분 보유 공시를 했고, 이후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모니터링 대상도 아니었다. 거래소 추가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이씨가 동진세미켐을 매수한 당일 종가가 전날보다 5% 이상 상승(하락)해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어야 하지만 당시 등락률은 3%에 그쳤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공시 이후 그 요건에 해당돼 거래소가 모니터링했고, 금감원도 예의주시했다.

이번 횡령 사태와 엮여 있는 금융회사도 할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은행이나 증권사가 단순히 거래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자금 흐름에 관여하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적으로 기업 계좌에서는 수백, 수천억원대 대금 결제가 수시로 발생한다. 만약 이씨가 기업 거래 특수성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적법한 절차를 통해 거래했을 경우 금융사에서 이를 의심할 필요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차적으로는 미흡한 내부통제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오스템임플란트처럼 단기간에 몸집을 키운 바이오, IT 기업들이 영업이나 핵심비즈니스를 앞세워 사업을 키우는 사이 뒷선의 시스템은 그만큼 따라 오질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통제, 회계관리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제2, 3의 오스템임플란트는 언제든 또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그간의 자본시장의 구멍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상장사의 미흡한 내부통제 시스템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다. 책임 소재를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을 지켜보는 사이, 이미 무너져내린 상장사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할 기회까지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권유정 기자(y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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