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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와인? 경쾌한 왈츠의 맛! [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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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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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문양에 인증번호를 새긴 오스트리아 와인들. 1986년 부동액 스캔들 이후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해 인증번호를 부여한다. 크발리테츠바인급 이상의 와인(PDO)은 화학적 분석과 공인테이스터의 시음심사를 거쳐 인증번호를 부여한다. ©Austrian Wine/ Herbert Le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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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관람했다. 물론 국내 모 극장에서 실황 중계로. 현지에서는 오전 11시 15분에 연주가 시작됐다. 한국은 오스트리아보다 8시간 빠른 터라 오후 7시 15분에 지휘봉이 화면의 정적을 갈랐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41년부터 해마다 신년음악회를 연다. 주로 왈츠와 폴카처럼 경쾌하고 밝은 곡을 연주한다. 올 신년음악회의 지휘는 아르헨티나 출신 유대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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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 와인처럼 아픈 과거가 있지만 신년음악회를 통해 희망을 전한다. 오스트리아 와인이 어두운 과거를 딛고 다시 우뚝 섰듯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캡처. ©Terry Li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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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과 빈 필이 연 호랑이해

바렌보임은 ‘오리엔탈리즘’을 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세계적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괴테의 작품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östlicher Divan)’에서 이름을 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분쟁 지역의 젊은 음악인들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2005년 팔레스타인의 행정수도 라말라에서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주회를 했다.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기 때문인지 그가 지휘하는 한 곡 한 곡이 가슴에 와닿았다.

슈트라우스 가족의 곡들로 짜인 본공연에 이어 앙코르 곡은 늘 그래왔듯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익살스러운 바렌보임의 손짓에 맞춰 관객이 함께 손뼉을 치는 이 순간을 모두가 기다린 건 아닐까 싶었다. 가뿐하고 힘찬 걸음을 걷는 듯 청중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따라 두 손을 맞댔다. 마스크를 쓴 관객들도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이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강제 합병당할 때였다. 유대인 단원들은 쫓겨났고, 그들의 빈자리는 나치 당원들이 꿰찼다. 무자비한 무력을 앞세운 나치 독일에 빈 필 역시 복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빈 필은 홈페이지에 이런 역사를 담담히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그러했듯 아픔을 딛고 새해마다 음악을 통해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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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포도밭 전경. 빈(Wien)은 오스트리아 수도이며 주 이름이기도 하다. 수도 한복판에 포도밭이 있으며 와인을 생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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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의 고향 ‘오스트리아 와인 스캔들’

귀가한 뒤에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탓’을 하며 와인을 딸 수밖에 없었다. ‘하필’ 오스트리아 와인으로.

사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 와인 자료를 찾는 와중에 알게 돼 덥석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의 역사에도 눈길이 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에도 아픈 과거가 있다. 1986년에 일어난 ‘오스트리아 와인 스캔들’이다. 세계 와인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그 사건 탓에 오스트리아 와인의 평판은 곤두박질쳤다. 세계 와인 시장에서 오스트리아 와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서북쪽에,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오스트리아를 독일어로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라 하는데 ‘동쪽의 영토’라는 의미란다. 아무튼 서로 이웃한 나라인지라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와인 관련 용어나 법규, 등급체계가 비슷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와인 스타일마저 비슷해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와인을 많이 수출했다.

독일의 고급 와인은 프레디카츠바인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주로 스위트한 와인이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에도 프레디카츠바인 등급이 있다. 오스트리아 와인 중개상들은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과 계약을 맺고 와인을 수출했다. 오스트리아산 와인은 독일에서 인기가 많았다. 스타일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독일산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부동액 원료로 강화한 단맛

그러다 일부 중개상이 문제를 일으켰다. 와인에 부동액에 쓰이는 대표적인 물질인 디에틸렌 글리콜(Diethylene glycol)을 넣어 고급 와인으로 둔갑시켜 수출한 것이다. 이 성분이 들어간 와인은 단맛이 강화되고 농도가 진해져, 맛과 질감이 풀보디한 스위트 와인과 비슷해진다. 마치 와인 법이 없던 옛날, 와인에 납을 넣어 단맛을 강화했듯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런 속임수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문제의 중개상 가운데 한 명이 세금 신고 과정에서 부동액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다가 독일 당국에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곧 독일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소수 중개상이 벌인 범죄였지만 이들 탓에 오스트리아 전체 와인은 부동액 와인으로 치부됐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오스트리아 와인 수입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명예 되찾자! 시음 심사 품질 보증의 반전

오스트리아 와인은 명예를 되찾기까지 무려 15년을 절치부심해야 했다. 먼저 서둘러 와인 법을 개정해 와인 품질을 규제했다. 와인의 안전성과 품질을 홍보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AWMB, The Austrian Wine Marketing Board)를 조직하고 EU에도 가입했다. 와인에는 화학적 분석과 공인테이스터의 시음 심사를 거쳐 인증번호를 부여해 품질을 보증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오스트리아 와인은 ‘2002년 런던 테이스팅’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세계적인 평론가들이 참여한 이 시음회에서 오스트리아 와인은 1, 2위를 포함해 7종이 10위 안에 들었다. 와인 업계가 깜짝 놀란 것은 물론, 비로소 오스트리아 와인이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2003년부터는 독일 와인법과 흡사한 기존 와인법에 프랑스 와인법처럼 원산지 개념도 도입했다. 바로 DAC(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 시스템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원산지’를 일컫는다. DAC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포도 품종, 숙성 기간, 알코올 도수 등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DAC 지정을 받은 원산지는 오스트리아 9개 주 가운데 부르겐란트(Burgenland),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빈(Wien) 등 4개 주에 주로 분포한다. 2020년 10월을 기준으로 18개 특정 생산 지역 가운데 16곳이 DAC 지정을 받았다.

손꼽히는 와인 평론가들도 오스트리아 와인을 호평했다. 특히 영국의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을 들 수 있다. 그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새로운 오스트리아 제국?(A new Austrian empire?)'이라는 칼럼을 써 오스트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알렸다.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도 2021년 오스트리아 와인 5종에 만점에 가까운 99점을 부여했다.

가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어두운 역사를 딛고 다시 새 희망을 전하듯, 오스트리아 와인도 스캔들을 딛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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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DAC(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 지정 산지 16곳과 오스트리아 대표 품종으로 만든 와인. 왼쪽부터 그뤼너 벨트리너, 츠바이겔트, 블라우프랜키쉬 각 2종씩. 출처: 각 와이너리 홈페이지, ©Austrian Wine©Austrian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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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스트리아 와인을 아시나요?

오스트리아 와인은 아직 한국에 낯설다. 주변에 오스트리아 와인을 소개하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 와인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영어명 ‘비엔나’가 붙은 소시지나 커피만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10여 년 전에 열린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이 아니었으면 필자 역시 오스트리아 와인을 몰랐거나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게도 당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함께 와인을 홍보했다.

오스트리아 와인 생산량은 전 세계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화이트, 로제, 레드, 스파클링, 스위트까지 다양한 와인이 생산된다. 품종도 다양하다. 그뤼너 벨트리너·벨쉬리슬링·치어판들러 등 토착 화이트 품종에, 츠바이겔트·블라우프랜키쉬·상크트 라우렌트(생로랑) 등 토착 레드 품종, 그리고 샤르도네·소비뇽블랑·피노블랑·리슬링·피노누아·카베르네소비뇽·메를로 등 국제품종도 있다. 이 가운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 1종과 레드 품종 2종을 소개한다.

그뤼너 벨트리너, 그 짜릿한 첫 만남

먼저,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이 품종은 오스트리아 와인 전체 생산량의 약 33%를 차지하는 대표 품종이다.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을 처음 맛본 날을 잊을 수 없다. 향과 맛이 리슬링, 소비뇽블랑, 샤르도네의 장점만 모아놓은 듯했다. 날카롭지만 깔끔한 산도와 풍부한 미네랄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라임·레몬·자몽·사과·복숭아 등 향긋한 과일 향에 후추·셀러리·허브·생강 향이 어우러지고 연기나 꿀의 풍미도 느낄 수 있다.

젠시스 로빈슨이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벨트리너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의 대안 중 하나다. 순수한 맛의 풀보디한 개성 있는 화이트 와인을 원한다면 그뤼너 벨트리너를 구해보라”고 극찬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두 타입으로 생산된다. 비교적 빨리 마실 수 있는 클라식(Klassik) 스타일과 장기 숙성해 마시는 리저브(Reserve) 스타일. 두 타입 모두 해산물은 물론이고, 가금류, 육류, 아시아 음식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품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음은 츠바이겔트(Zweigelt). 그뤼너 벨트리너가 화이트 품종의 대표라면 츠바이겔트는 레드 품종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재배될 정도로 식탁에서 사랑받는 품종이다.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대학 교수였던 프레드리히 츠바이겔트(Friedrich Zweigelt) 박사가 1922년에 블라우프랜키쉬와 상크트 라우렌트 품종을 교배해서 만들었다.

츠바이겔트 품종으로 와인을 빚으면 적당한 산미와 타닌을 지니며, 딸기와 체리향에 더해 허브, 후추 등 여러 향신료 풍미가 난다. 가벼운 스타일에서부터 풀보디의 진하고 묵직한 스타일까지 생산된다. 튀기거나 구운 닭과 오리 요리, 소시지, 돼지고기구이와 잘 어울린다.

대표 레드 품종에는 블라우프랜키쉬(Blaufränkisch)도 있다. 츠바이겔트와 함께 오스트리아 토착 품종이다. 양조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츠바이겔트보다 색이나 풍미가 진하고 묵직하다. 잠재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리, 자두 등 검붉은 과일 향에 후추 등 여러 향신료 향이 난다. 고기 요리에 곁들여 마시면 더 맛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대표 요리인 슈니첼과 마리아주가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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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내추럴 와인들. 오스트리아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이 탄생한 곳이다. 1920년대 오스트리아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창시했다.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잠실점 보틀벙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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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와인에는 빼놓을 수 없는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알고 보면 오스트리아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의 탄생지다.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이를 창시했다. 다양한 토착 품종으로 만든 내추럴 와인을 마시다 보면, 역시 ‘원조’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스트리아 와인. 새해 첫날의 소리와 맛의 여운이 당분간 지속할 듯하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지만 아무나 다시 인정받지는 못한다.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고 보니 잔에 담긴 와인이 폭풍이 지나간 수면처럼 고요했다. 거두절미, 오스트리아 와인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경쾌한 왈츠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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