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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해산물 상자' 스캔들 발칵…"168억 받았다" 中공안 2인자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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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다큐서 파벌조성·뇌물수수 시인

시진핑 3기 사법 계통 완전 장악 노린듯

중앙일보

15일 방영을 시작한 CC-TV 반부패 5부작 다큐멘터리 ‘무관용’ 1회에서 쑨리쥔 전 공안부 차관이 뇌물 수수를 시인하고 있다.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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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해마다 4~5차례 베이징을 찾아와 매번 30만 달러(약 3억5700만원)를 해산물 선물 상자에 넣어 보내왔다. 올 때마다 ‘작은 해산물’을 보냈다고 말했고,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챘다.”

15일 쑨리쥔(孫力軍·53) 중국 전직 공안부 부부장(차관)이 방송에 등장해 심복으로부터 총 9000만 위안(약 168억원)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황금시간대인 이날 오후 8시 5분 중국중앙방송(CC-TV) 채널 1이 방영한 5부작 반(反)부패 다큐멘터리멘터리 ‘무관용(零容忍·영용인)’ 1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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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방영을 시작한 CC-TV 반부패 5부작 다큐멘터리 ‘무관용’ 포스터.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 스캔들을 첫 사건으로 다뤘다.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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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리쥔 스캔들은 지난 2017년 말 시진핑(習近平) 2기 출범 후 지금까지 최대 정치 스캔들로 불린다. 하지만 CC-TV 다큐 ‘무관용’은 지금까지 공개된 쑨리쥔 혐의의 절반만 들추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당 중앙기율위가 쑨 전 부부장의 당직과 공직을 동시에 박탈하는 솽카이(雙開) 처분 당시 열거했던 7대 혐의 중 파벌조성, 매관매직, 향락 사치만 다뤘다.

대신 “신종 코로나 폐렴 방역 일선에서 무단으로 이탈해 기밀 자료를 대량 은닉 배포한 혐의”, “정치적 유언비어를 만들어 유포한 혐의”, “권력과 여자, 금품과 여자를 거래한 혐의” 등은 다루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13일 쑨 전 부부장을 검찰에 정식 기소하면서 기율위가 발표한 뇌물수수, 주가조작, 불법 총기 소지 등 3대 혐의 가운데 뇌물수수만 공개했다. 코로나 기밀, 불법 총기, 주가 조작, 정치 유언비어 등 당 기율위가 발표한 쑨리쥔 죄목의 핵심 부분은 영구 미제로 남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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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3월 10일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우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후베이 화상회의에서 쑨리쥔(앞줄 왼쪽) 당시 공안부 부부장 겸 중앙코로나대응영도소조 소조원이 우한을 대표해 참석한 장면.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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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파 공공위생 석사, 상하이서 공직 입문



산둥성 칭다오(靑島) 출신인 쑨리쥔은 1969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상하이 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쑨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대에서 공공위생과 도시관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상하이 위생국에서 통역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시진핑 1기 정법위 서기를 역임한 멍젠주(孟建柱·75)의 비서를 역임하면서 초고속 승진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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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3월 10일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우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 동호 인근의 주택 단지를 찾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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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월 코로나19 발발 직후 쑨은 우한(武漢)에 머물렀다. 봉쇄 직후 중앙코로나대응영도소조에 공안부 대표로 선발되면서다. 그는 3월 5일 1996년생 여경 두 명의 입당 선서를 함께했다. 이후 10일 시진핑 주석이 우한을 시찰했다. 당일 CC-TV 메인 뉴스인 신원롄보(新聞聯播)는 시 주석이 주재한 화상 회의에 참석한 쑨 부부장의 모습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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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3월 10일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우한의 훠선산(火神山) 병원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의료진과 환자를 화상을 위로하고 있다.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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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리쥔의 몰락은 시 주석의 우한 방문 한 달 뒤 시작됐다. 우한 봉쇄 해제 열흘쯤 뒤인 4월 19일 심야에 당 기율위는 돌연 홈페이지를 통해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쑨리쥔의 낙마를 타전했다. 구체적인 기율 위반 혐의는 밝히지 않았다. 시 주석의 우한 시찰과 연루된 것 아니냐는 억측만 나돌았을 뿐이다.



쑨 낙마 직후 사법 계통 정풍운동 개시



쑨리쥔이 낙마한 그해 7월 8일 중국 사법 분야에 대대적인 정풍운동이 시작됐다. 법원·검찰·공안·감옥 등 사법 시스템을 지휘하는 중앙정법(政法·정치법률) 위원회의 천이신(陳一新·63) 비서장이 전국 정법 대오 동원 회의를 주재하면서다. 시진핑 주석의 직계인 저장(浙江) 인맥의 핵심인 천 비서장은 회의에서 “옌안 정풍(延安整風) 교육을 전개하라”며 2022년 상반기까지 전국 정법계통(한국의 사정라인)의 이행 시간표도 제시했다. 쑨리쥔 체포가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촉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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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방영을 시작한 CC-TV 반부패 5부작 다큐멘터리 ‘무관용’ 1회에서 쑨리쥔 전 공안부 차관의 죄목으로 시진핑 주석의 권위와 당 중앙의 권위를 수호하라는 ‘두 가지 수호론(兩個維護論·양개유호론)’을 배반했다는 혐의를 언급하는 화면.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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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정법 라인은 ‘칼자루[刀把子]’로 불린다.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을 일컫는 ‘총자루[槍杆子·촹간쯔]’, 연예·문화와 선전을 통칭하는 ‘붓자루[筆杆子·비간쯔]’와 함께 공산당 집권을 지지하는 3대 기둥이다. 시 주석이 집권 1기 쉬차이허우(徐才厚)·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부패 혐의로 숙청하며 군부를 장악했고, 집권 2기 역시 저장성 인맥인 심복 황쿤밍(黄坤明·66)을 내세워 공청단 계열의 류치바오(劉奇葆·69)로부터 중앙선전부 부장 자리를 접수해 ‘붓자루’를 장악했다면, 오는 가을 시작될 집권 3기에는 ‘칼자루’까지 완전히 접수하는 시나리오가 쑨리쥔 낙마로부터 2년간 진행된 셈이다.

15일 쑨리쥔은 CC-TV 카메라 앞에서 “18대(시진핑 1기가 출범한 2012년 당 대회) 혹은 19대 이후에도 조심하거나 그만두지 못하고 적지 않은 잘못과 죄과를 저질렀음을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쑨둥성(孫東升) 중앙기율위 사건 심리실 부주임은 CC-TV에서 “쑨리쥔 사건은 정치문제와 경제문제가 뒤엉킨 전형적인 사건”이라고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정했다.

중앙기율위는 지난해 9월 30일 홈페이지에 쑨리쥔의 첫 죄목으로 “‘두 가지 수호론(兩個維護論·양개유호론)’ 배반”을 들었다. ‘양개유호론’은 2017년 19대 직후 등장한 “시진핑 총서기가 당 중앙에서 핵심, 전당에서 핵심이라는 지위를 확고하게 수호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적이고 통일된 지도를 확고히 수호한다”는 방침을 말한다. 쑨 부주임이 말한 ‘정치문제’는 결국 쑨리쥔이 시진핑의 권위를 수호하지 못하고 모종의 문제를 일으켰음을 암시한다.



시진핑 집권 후 장관급 484명, 당원 399만명 처분



공안부 최연소 부부장 쑨리쥔이 시진핑의 복심 왕샤오훙(王小洪·64) 부부장에게 역전을 허용한 결정적인 죄목은 무엇일까. 다큐 ‘무관용’은 쑨리쥔이 개인 파벌을 만들어 당의 단결을 해쳤다고 강조했다. 궁다오안(龔道安) 상하이 부시장 겸 공안국장, 덩후이린(鄧恢林)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왕리커장쑤성 정법위 서기, 류신윈(劉新雲) 산시성 공안청장 등 공안 요직에 측근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다. 이에 대해 결국 올 하반기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는 파벌 행위를 원천 봉쇄하려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관용’은 지난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중앙기율위가 수사한 사건이 총 407만8000건, 연루 인물은 437만9000명이라고 집계했다. 그 가운데 장관급 이상을 의미하는 중앙에서 관리하는 중관간부(中管干部)만 484명이 포함됐으며, 기율위의 처분을 받은 숫자만 399만8000명에 이른다.

※쑨리쥔 사건 일지

2020년 3월 10일: 시진핑 주석 우한 시찰

2020년 4월 19일: 당 중앙기율위, 쑨리쥔 엄중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 착수

2020년 7월 8일: 전국 정법 대오 동원 회의, 옌안정풍 운동 시작

2021년 9월 30일: 쑨리쥔 당직·공직 박탈

2021년 11월 5일: 국가감찰위 수사 종결, 검찰 기관 이송. 뇌물 수수 혐의

2022년 1월 13일: 뇌물수수, 주가조작,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수사 종결, 검찰 정식 기소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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