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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매경춘추] 기초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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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이 말은 운동은 물론 학문에서도 만고의 진리다. 그리고 그 기초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체득화(體得化)'가 필요하다. '체득'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바로 실행에 옮길 정도로 확실하게 아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후과정으로 일할 때다. MIT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은 '화학안전교육'을 받는다. 불이 나거나 불산과 같은 독극물을 쏟으면 즉시 건물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 그러면 소방차가 와서 화재를 진압하거나 독극물을 처리한다. 문제는 소방차가 출동하면 매우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대에서 온 박사후연구원이 실험하다가 실수로 불산(HF 수용액)을 실험박스(HOOD)에 쏟는 일이 발생했다. 실험박스에 쏟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불산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물질이지만 치명적인 독극물로, 2019년 일본과의 소재·부품 전쟁에서 화제가 된 바로 그 물질이다.

실험실원 모두 교육받은 대로 대피 후 신고해야 할지, 아니면 스스로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불소 음이온은 칼슘 이온과 쉽게 결합해 매우 낮은 용해도를 가지며 단단한 형석(불화칼슘)을 만들 수 있다. 충치 예방을 위해 불소치약을 사용하는 것도 치아 표면의 칼슘이 불소 음이온과 결합해 충치균이 침입하지 못하는 단단한 막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실험박스의 차단막을 내리고 아세트산 칼슘 수용액을 실험박스 내에 뿌렸다. 불산을 중화해 독성이 매우 약한 형석으로 만들어 위급한 상황을 간단히 수습한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그 박사후연구원은 원리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고등학교에서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용해도 곱과 화합물의 경도를 생각해 불소 음이온과 쉽게 결합하는 칼슘 이온을 제공하는 아세트화 칼슘을 사용한 것인데, 웃으면서 고등학교 때 배웠다고 한 것이 자기를 비웃는다고 생각한 그 연구원에게 알아듣게 설명하느라 못하는 영어로 엄청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실제로 학문의 기초가 되는 많은 부분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학부 과정에서 배운다. 가령 다양한 산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유기재료 연구에 필요한 합성 반응은 학부 수업에서 대부분 배운다.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은 재미있는 사투리나 연상단어를 사용해 기억하기 쉽게 화학의 기초를 가르치셨다. 알고 있는 것도 반복해서 외우게 하셨다. 기초가 되는 지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도록 하신 것이다.

학문의 길에서 기초는 아주 중요하다. 기초는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실제 상황에서 그것을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배우고 익히는(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체득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다.

[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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