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다 잡을래"... 이재명, 윤석열의 '안티 페미'와 소극적 차별화

윤석열 젠더 갈라치기에 '전략적 모호' 전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일하는 여성을 위한 스타트업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주도하는 '젠더 갈라치기'에 선을 긋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며 2030세대 남성들에게 노골적으로 구애하는 윤 후보와 요 며칠 거리를 둔 채 2030세대 여성들에게 반 발짝 다가섰다.

성평등·젠더 이슈에 대한 이 후보의 입장은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도 아니다"는 것에 가깝다. 남성과 여성 표심 모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페미니즘은 차별 시정과 평등 강화"

이 후보는 지난 7일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소수자 이슈 전문 매체인 '닷페이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데 이어, 10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스타트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후보는 "일과 가정의 양립과 직장 내 차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다"며 "정부에서도 고민하고 어떤 해결 방안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남성 청년들의 시선도 의식했다. 그는 "여성 스타트업의 주체가 여성들만은 아닌데 여기 여성이 많은 것 같다"며 "또 (여성을) 편들러 간 게 아니냐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고 너스레를 놓았다.

이 후보는 간담회가 끝난 뒤 젠더 논쟁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 애썼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폐지한다, 반대한다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개선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윤 후보가) 말씀해주면 좋겠다"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이 후보는 일찌감치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폐지 반대"를 굳이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꼭 남녀로 갈라서 볼 문제는 아니고, 차별적 요소는 시정하고 평등적 요소는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전날 "페미니즘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한 것보다 다소 후퇴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 표심 사이 '줄타기'

이 후보의 이 같은 줄타기는 윤 후보와의 차별화를 노린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해 말까지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순회하며 게시글을 올리는 등 2030 남성들에게 더 공을 들였다. 전반적 지지율 상승세에도 2030 여성 지지율은 정체하자, 친여성 행보로 전략을 틀었다. 이 후보는 지난 5일 데이트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황예진법' 입법을 약속하는 등 여성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 여성미래본부는 이 후보의 '전향'을 더 밀어붙이고 있다. 여성 공약이 다른 공약보다 후순위로 밀린 점, 이 후보가 최근 친여성 성향 유튜브 채널 출연을 망설인 점 등을 들어 "젠더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압박 중이다. 가치판단은 미룬 채 남성과 여성 모두의 지지를 받겠다는 두루뭉술한 태도로는 누구의 선택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 후보 주변에서 나오는 우려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