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으로부터 `자유 메달`을 받고 있는 포이티어.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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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7일(현지시간) CNN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카리브해 바하마 총리 대변인은 포이티어가 전날 저녁 바하마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포이티어는 흑인 배우의 존재감이 없던 1950∼1960년대 할리우드에서 인종의 벽을 깬 개척자이자 선구자였다. AP통신은 포이티어에 대해 "흑인이 스크린에서 그려지는 방식을 바꾼 배우"라며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만큼 스크린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드물다"고 평가했다.
192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바하마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 무대에 몸담았다. 이후 1950년 영화 '노웨이아웃(No Way Out)'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1958년 인종주의자인 백인 죄수 동료(토니 커티스)와의 탈주극을 그린 '흑과 백(The Defiant Ones)' 등 그의 작품 중엔 유독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들이 많았다. '흑과 백'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치면서 흑인 배우 중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63년작 '들판의 백합(Lilies of the Field)'에서 백인 수녀들이 예배당을 짓는 것을 돕는 떠돌이 노동자를 연기해 1964년 결국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7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에선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흑인 의사를,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에선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역을 맡았다. 같은 해 영국 빈민촌 학교에 부임한 아프리카 출신 교사를 연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70~1980년대에는 감독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벅 앤 프리처(Buck and the Preacher)' '폭소 감방(Stir Crazy)' 등을 연출했으며 1997년 '자칼(The Jackal)'에서는 당대 최고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리처드 기어와 함께 열연하기도 했다.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는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민간인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손수 걸어주기도 했다. 미국·바하마 국적을 모두 가진 포이티어는 1997∼2007년 주일본 바하마대사, 2002∼2007년 주유네스코 바하마대사를 맡기도 했다.
한편 한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의 별세 소식에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오스카 수상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는 인스타그램에 "당신의 작품이 내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형언할 수 없다"며 "그 탁월함은 우리 흑인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배우 우피 골드버그도 트위터에 "그는 우리에게 별에 가닿는 법을 보여줬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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