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英BBC에 "탈레반, 합의 어기고 카불 공격"
"가니, 남겨진 사람들 위한 부끄러움 없어" 비판도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접수한 올해 8월 15일 당시 아프간 대통령이었던 그는 해외로 피신해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러 왔다. 가니 전 대통령이 도피 당시 수천만 달러를 챙겨 야반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6월 워싱턴에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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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 전 대통령은 “(아프간 사태의) 책임은 분명히 미국에 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며 “나는 전임자(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처럼 탈레반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국제 파트너십을 신뢰했지만,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지속할 것이라고 가정한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카불 함락 이후 그가 언론 매체와 가진 첫 대담이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019년 1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외국군 철수·아프간 내 국제 테러조직 불허’ 등의 원칙에 합의했고, 이듬해 2월 29일 ‘미·탈레반 평화 합의’가 최종 타결됐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본격적인 평화 협상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7개월 뒤인 작년 9월부터였다. 결국 협상 초기 미국이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것이 붕괴의 원인이었다고 책임을 돌린 것이다.
가니 전 대통령은 야반도주설을 부인하며 “카불 함락 직전까지 아프간을 떠날 계획이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해외 도피는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헬리콥터에 탑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또 “돈을 해외로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을 단호히 말하고 싶다”며 “내 생활 방식은 모두에게 알려져 있으니 어떤 국제적 조사든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카불에서 여성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탈레반 군인들이 공중 발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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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긴박했던 8월 15일 하루를 상세히 털어놨다. 가니 전 대통령은 탈레반이 “그날이 시작된 직후” 카불에 진입하지 않기로 아프간 정부와 합의했지만, 두 시간 만에 이를 어겼다고 했다. 그는 “탈레반의 두 파벌이 다른 방향에서 진격하고 있었다”며 “이는 500만 명의 시민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대규모 충돌 가능성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가니 전 대통령은 “아내와 측근들이 카불을 떠나도록 조치한 뒤 나는 국방부로 가려 했지만, 함둘라 모히브 당시 아프간 국가안보보좌관이 ‘저항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며 탈출을 재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反) 탈레반 병력이 주둔한 아프간 동부 코스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이곳 역시 탈레반에 함락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결국 해외 도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아프간을 떠나는 게 분명해졌다”며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또 “나는 희생양이 됐다”면서 “카불을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 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8월 18일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녹화 영상을 통해 아프간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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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미 시사 주간지 뉴요커는 이달 10일 미 정부 기밀문서를 근거로 ‘가니 전 대통령이 모히브 안보보좌관과 함께 7월 말부터 해외 도피를 계획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모히브 보좌관은 카불 함락 전날인 8월 14일 미 국무부에 연락해 “정치적 해결이 불발될 경우에 대비해 가니와 나를 대피 계획에 포함해달라 요청했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BBC는 가니 전 대통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라를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아프간 저널리스트 사미 마흐디는 트위터를 통해 “가니의 인터뷰는 지난 7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정으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슬픔·부끄러움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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