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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15대 종정에 성파 스님 만장일치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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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의 최고지도자인 제15대 종정(宗正)에 13일 성파(82) 스님이 추대됐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방장인 성파 스님은 선(禪) 수행으로 길어올린 굳건한 견처와 일상 생활에서 자유롭게 풀어내는 활발발(活潑潑)함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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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만난 방장 성파 스님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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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30대 때였다. 당시 통도사에는 당대의 선지식으로 불리던 경봉 스님(1892~1982)이 주석하고 있었다. 성파 스님과 경봉 스님 사이에는 층층시하였다. 절집에서는 군기도 세고, 법랍에 따른 상하 관계도 엄격하다. 젊은 성파 스님은 경봉 스님에게 시를 써서 보냈다. 단순한 시가 아니었다. 선 수행의 안목을 담은 글이었다.

경봉 스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거기에는 ‘능문능시(能文能詩)’라고 적혀 있었다. 글자 그대로 풀면 ‘능히 글을 쓰고, 능히 시를 짓는다’는 뜻이다. 선가의 어법으로 풀면 “마음에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성파 스님의 견처에 경봉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경봉 스님은 ‘속불혜명(續佛慧命)을 희옹희옹(希顒希顒)하노라’라고 썼다. “부처의 법을 잇기를 바라고 또 바라노라”는 의미다. 80대 경봉 스님이 30대 성파 스님의 견처를 인가한 셈이다.

그로부터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성파 스님은 통도사의 방장이 됐고, 급기야 조계종의 종정으로 추대됐다. 일각에서는 성파 스님을 가리켜 “사판과 이판을 겸했다”고 평한다. 그는 선방의 수좌들처럼 동안거와 하안거를 나면서 제방선원으로만 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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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운암 경내에 있는 장독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전통 장독을 수집한 성파 스님은 절집에 내려오는 고유의 방식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고 있다. "앞으로 절집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성파 스님의 지론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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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을 중심으로 들꽃 축제와 시화전을 만들어 지역민을 초대하고, 650톤에 달하는 도자기를 구워서 팔만대장경을 제작해 장경각을 세우고, 1000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옻칠로 고려와 조선의 불화를 모두 되살렸다.

성파 스님은 이판과 사판, 어느 하나에만 방점을 찍지 않는다. 사실 부처님도 그랬다. 부처님은 피나는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그 후에는 팔십 평생 그 깨달음을 세상에 펼치는 일에 주력했다. 성파 스님은 “이판(理判)은 진리를 탐구하는 선객들이다. 사판(事判)은 집도 고치고, 행정도 하고, 절집 살림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이판이 큰가, 사판이 큰가?”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그 물음에 성파 스님은 이렇게 자답했다. “이사무애(理事無碍)라는 말이 있다. 이치에도 걸림이 없고, 일에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마음공부하고, 그걸 세상에 펼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해야 한다. 진리의 이론만 알고 사물에 어두우면 곤란하다. 그럼 일이 엉망진창이 된다. 반대로 사물에만 밝고 진리에 어두워도 곤란하다. 그럼 말을제대로 못한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둘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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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젊은 나이에 경봉 스님과의 법거량에서 인정을 받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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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이판과 사판을 걸림 없이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사라도 대선사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성파 스님의 행보는 종종 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지난봄에는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7000년 전 선사 시대의 그림을 되살렸다. 한국 전통의 나전 기법과 옻칠을 사용해 손수 만든 예술 작품이었다. 마치 검은 우주의 허공에 별처럼 반구대 암각화를 띄워놓은 듯했다. 그걸 물 속에 담근 채 서운암 앞에서 전시했다. 전문적인 예술가들도 놀라운 발상과 작품의 완성도에 혀를 내둘렀다.

성파 스님의 행복론은 명쾌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물음에 성파 스님은 주저 없이 “현재!”라고 답한다. “현재가 없으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를 중시하지 않을 때가 많다. 행복도 그렇다. 다들 ‘이다음의 행복’만 말한다. 그러다 보면 현재가 수렁에 빠진다. ‘이다음의 행복’까지도 못 간다.”

이 말끝에 성파 스님은 ‘외줄 타기 하는 사람’을 예로 들었다. “외줄 타는 사람에게 뭐가 제일 중요하겠나. 자기 발 얹어놓은 바로 그 자리. 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 자리가 없으면 떨어져 죽으니까. 그게 어디인가. 바로 지금 여기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각자의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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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직접 그린 그림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서예와 전통 민화, 도자기와 전통 장류 등 다방면에서 성파 스님은 놀라운 창작력을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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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새가 숲에 있을 때는 극락세계인 줄 모른다. 새장에 갇히면 비로소 ‘저 숲이 극락이구나’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니 극락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이 극락세계다. 그걸 고통의 바다라고 착각하지 마라. 여기가 극락임을 알면 날마다 좋은 날이 펼쳐지고,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조계종 종정의 임기는 5년,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종정 임기 시작일은 현 진제 종정의 임기가 끝나는 다음날인 3월 26일이다.

◇종정(宗正)=대한불교 조계종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다. 그동안 선승 출신인 효봉ㆍ성철ㆍ청담 스님 등이 종정을 역임했다. 부처님오신날과 동ㆍ하안거 때 내놓는 종정 법어는 늘 세상의 관심사다. 종단 스님들에게 계(戒)를 수여하는 전계대화상 위촉권, 스님에 대한 포상ㆍ사면 등의 권한이 있다. 종단 행정권은 총무원장이 맡는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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