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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K팝 음반 수출 2억달러의 ‘그늘’...기후위기 외치는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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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팬덤문화, 환경에 꽂히다

K팝 키워드로 부상한 에코

팬들 “음반쓰레기 줄이기부터”

헤럴드경제

방탄소년단·블랙핑크 등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스타들의 등장으로 K팝의 국제적 영향력이 커지자 이들의 MZ세대 팬덤은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K팝 산업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누군가가 지구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방탄소년단 RM)

“지구는 우리의 행성입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블랙핑크)

K팝 스타들의 ‘선언’이 무색하게도 K팝 산업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K팝 수출 2억달러를 만든 주요 매출이 ‘지구의 위기’를 자초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유례 없는 호황기를 맞은 K팝 전성시대의 그늘이다. ‘환경 문제’는 팬덤의 ‘강력한 요구’와 맞물려 K팝 아티스트와 업계도 피해갈 수 없는 이슈로 떠올랐다.

‘한류팬 1억명’ 시대를 연 주역인 K팝을 바라보는 팬덤의 시선이 환경 문제로 향하고 있다. K팝 아티스트에게 ‘이슈 스피커’가 되기를 요구하며 영향을 주고 받은 Z세대 팬덤이 이제 다시 K팝 산업계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책임감을 가지고 기후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요구다.

K팝 팬덤이 만든 기후위기 대응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의 이다연 활동가는 “K팝 팬층의 다수인 MZ세대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어 기후위기 감수성이 높다”면서 “케이팝포플래닛은 우리가 K팝을 사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후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K팝 음반 판매량은 약 4970만장(1~10월까지·가온차트 집계)을 기록, 음반 수출액 1억8974만8000달러(약 2256억원·관세청 기준)를 기록하며 최대 호황을 맞았으나, 그 이면은 씁쓸하다. 음반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K팝 산업의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업계 규모를 키운 K팝 음반은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주요 수익원이고, K팝 팬덤의 필수 소장품이다. K팝 음반은 CD 한 장만 팔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다채로운 음반 패키지를 구성한다. 화보집 수준의 사진집과 신용카드 크기로 만든 포토카드, 포스터와 엽서, 스티커는 물론 일부에선 유년시절 사진까지 담는다. 많은 경우 CD 한 장에 무려 25개까지 구성품이 들어간다. 여기에 팬사인회 응모권을 한 장씩 준다. 살뜰한 구성에 ‘다다익선’인 응모권까지 가지려다 보니 팬들은 앨범을 한 장만 사지 않는다. 팬들 사이에선 “앨범을 50장은 사고 49장은 처박는 일”이 빈번하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 음반은 지나치게 많은 구성품과 과포장, 중복구매를 유도하는 전략 등 모든 기획사가 과소비를 집단적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헤럴드경제

MZ세대 K팝 팬덤이 만든 기후위기 대응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은 “우리가 K팝을 사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후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문제는 ‘소재’다. 대부분의 K팝 음반은 재활용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환경에도 해롭다. 일단 포장재부터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꼽은 ‘나쁜 플라스틱’이다. 투명 폴리염화비닐(PVC)로 음반을 포장하고, 재활용이 되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CD를 제작한다. 사진집과 포토카드는 코팅된 종이를 사용하지만, 코팅과 종이를 분류해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냥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음반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소비자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 이다연 활동가는 “전 세계의 K팝 팬덤이 앨범 문제를 지적하며 불필요한 비밀 포장, 플라스틱 포장의 최소화, 패키징의 간소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K팝의 주요 팬층인 MZ세대의 요구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올초부터 서서히 조짐이 나타났다. 가수 청하는 올초 발매한 정규 1집 ‘케렌시아’ 앨범을 통해 K팝 최초로 친환경 소재로 제작했다. 지난 7일 발매된 송민호의 솔로 정규 3집 ‘투 인피니티(TO INFINITY)’가 저탄소 용지, 재생 용지, 100%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해 제작됐다. 송민호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아티스트와 기획사 모두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고민의 결과를 실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사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함께 팬들의 인식 전환도 따라야 음반 시장의 변화가 이뤄진다. 정민재 평론가는 “당장 눈앞의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다량 소비를 조장하는 음반 발매 방식을 개선하는 등 기획사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우선해야 하고, K팝 시장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초동 판매량(일주일 판매량) 등 순위에 매달리는 팬들의 문화를 재고하고 자연스러운 소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는 ‘생존의 문제’다. 전 세계 음악계도 기후 문제에 공감하며 ‘지속가능한 경영’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라디오헤드, 아델 등이 속한 영국 음반사 베거스 그룹(The Beggars Group)과 영국 유명 인디 레이블 닌자 튠(Ninja Tune)은 음반사로는 이례적으로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시더바우 새지 부산대 한국학 교수는 “한국의 음악 산업은 팬데믹 속에서도 혁신적인 방법으로 강한 적응력을 보여줬다”며 “K팝 산업을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들이 ESG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팝의 MZ세대 팬덤 역시 엔터테인먼트사에 미래지향적 ‘기후 행동’을 요구한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엔터테인먼트사에 변화를 촉구한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캠페인 성명에선 83개국에서 1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K팝 팬덤의 수준 높은 요구에 비해 업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극소수의 인식 전환만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K팝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민재 평론가는 “K팝이 역대 최대 음반 판매량, 수출량을 기록하는 때에 가요계의 4대 기획사(SM YG JYP 하이브)를 주축으로 군소 기획사들이 모여 공통의 의견을 모아 앨범 제작, 저탄소 콘서트 개최 등 환경 문제에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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