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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국내로 온 국보급 러시아 성상화...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에 영향 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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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이콘:어둠을 밝히는 빛'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내년 2월 27일까지 러시아 국보급 이콘 유물 80점 소개
한국일보

15세기 후기에 로스토프 지역에서 제작된 '성모 마리아'. 신체가 길게 표현돼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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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 회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러시아 이콘(성상화)을 대거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러시아 이콘박물관의 국보급 이콘 유물을 대거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러시아 이콘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5~19세기 동방정교회 이콘 유물 80여 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 전시를 진행 중이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우선 6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예수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새까맣고 동그란 예수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콘 앞에 놓인 촛불은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며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사승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부관장은 “이콘은 독창적 역할을 한 예술 작품인 동시에 종교적 도상이기도 하다”며 “러시아 성당에 가면 이콘 앞에 기도를 할 수 있게 초를 둔 것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예술 감독을 맡은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는 “러시아 이콘은 유럽의 이콘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적 숨결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라며 “그윽하면서도 명상에 잠긴 듯한 눈빛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콘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다. 러시아 북서부 야로슬라프주에 속하는 로스토프 지역에서 제작된 이콘에서는 길게 표현한 신체,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 서부 노브고로드주의 주도인 노브고로드의 이콘은 붉은색을 풍부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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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에 제작된 '미라의 성 니콜라이'.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도시 형상을 들고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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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 속에서는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성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 예컨대 이콘 속 성 니콜라이는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도시를 들고 있다. 적으로부터 도시가 공격당하자 성 니콜라이가 나타나 도시를 보호했다는 일화를 그려낸 것이다. 사승환 부관장은 “전쟁이 일어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 기적으로 인해 살아나고 이겼다는 체험은 러시아인들에게 성 니콜라이를 특별히 기억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재현한 성화벽을 만나볼 수 있다. 성화벽은 신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과 성직자들이 예식을 하는 공간을 분리하는 벽을 말하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다. 가운데에는 ‘왕의 문’이라고 불리는 문이, 오른쪽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왼쪽에는 ‘성모자’의 이콘이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 이콘전과 더불어 연말에는 러시아 이콘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대작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31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하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대표작을 포함해 바실리 칸딘스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미하일 라리오노프, 나탈리야 곤차로바 등 49명의 작품 75점을 소개한다.

김영호 교수는 “말레비치는 청년 시절 러시아 이콘에 관한 연구를 매우 심도 있게 했던 인물로, 하얀 바탕에 검정 사각형 하나를 그려놓고 절대주의라 이름 붙이고, 이 작품을 러시아 이콘의 현대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며 “작품에 숨겨져 있는 절대적 세계의 근원은 러시아 이콘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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