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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핵무기 내게 팔아라"…카자흐 전 대통령, 카다피 핵거래 제안 일화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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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구소련 독립 직후 세계 4대 핵보유국 부상

카다피, 적극적으로 핵미사일 매입 가능 여부 타진

아시아투데이

미국 유명감독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 ‘골드맨의 역사’에서 1990년대 초 카자흐스탄 독립 당시 일화를 인터뷰하는 나자르바예프 전 초대 대통령(왼쪽)과 올리버 스톤(우) /사진=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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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김민규 누르술탄 통신원 =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카자흐스탄 독립 직후 보유했던 핵미사일 매입을 추진했던 일화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에 의해 공개됐다.

카자흐스탄 일간 텡그리뉴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카자흐스탄 건국일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골드맨의 역사(History of GoldMan)’에 출연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독립 직후, 카자흐스탄이 보유했던 핵미사일을 리비아의 카다피가 팔라고 제안했었다”고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91년 12월 소련이 갑작스레 붕괴하면서 신생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은 난데없이 핵무기 강국이 됐다. 소련이 연방국가에 분산 배치했던 핵무기의 소유권이 넘어왔기 때문에 세계 4대 핵무기 보유국이 된 카자흐스탄은 당시 전략 핵무기 1410개, 대륙간탄도미사일 104기와 대량의 플루토늄과 고눙축우라늄 등을 갖고 있었다.

소련은 카자흐스탄이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점에 착안해 세미팔라친스키 지역에 핵전략연구소를 설립하고 450회 이상 핵·수소폭탄 실험을 진행했다. 소련이 처음 핵실험에 성공한 핵전략연구소도 바로 세미팔라친스키 핵전략연구소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 제임스 베이커 미 전 국무장관, 요큐카 피셔 독일 전 외무장관 등이 (자신을) 찾아와 핵 미사일부터 물어보길래 ‘그냥 그대로 있다’고 대답했다”며 소련 붕괴 후 혼란스러웠던 국제정세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특히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여러 이슬람 국가로부터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카자흐스탄이 이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잇따라 받았다며, 이 중 리비아 국가수반이었던 카다피가 적극적으로 핵미사일 매입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고 주장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전 의장이 카다피의 특사자격으로 자신을 직접 찾아와 세미팔라친스키 핵전략연구소로 대변되는 핵전력을 매각하라고 제안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이 같은 제안에 “얼마나 큰 돈인지 감도 안왔지만 200억 달러를 지불할 수 있냐고 역제안했다”며 “(카다피의) 제안내용 자체가 황당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카다피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리비아에 핵무기를 판매했을 것이냐는 올리버 스톤 질문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당시 카자흐에는 워싱턴까지 단 28분만에 도달 가능해 미국이 ‘사탄’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SS-18 미사일로 무장한 3개의 핵미사일 사단이 있었다”며 “만약 이를 계속 보유했거나 리비아 등과의 거래 도구로 활용했다면 카자흐스탄은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텡그리뉴스에 따르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리비아 등의 요구를 거절한 후 신속하게 비핵화 결단을 내리고 경제발전 노선을 선택했다. 이후 핵무기는 러시아에 넘겨져 폐기 절차를 밟았고, 그 대가로 미국이 16억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하는 등 나자르예프 전 대통령의 선택은 성공적인 비핵화 모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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