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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극적 화합’이냐, ‘전략적 타협’이냐···국민의힘 갈등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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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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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한 식당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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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의 승부수가 통한 것일까, 후보의 전략적 타협인 것일까.’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를 둘러싼 ‘잡음’이 일단락된 모양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3일, 울산에서 ‘잠행 아닌 잠행’을 이어가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찾아가 갈등을 봉합했다. 이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승낙하며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한 달여간의 힘싸움이 마무리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윤 후보가 이 대표와의 화해, 김 전 위원장 영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치른 비용은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의 ‘자중지란’ 사태는 당 내부의 알력 다툼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윤 후보 역시 ‘측근 챙기기’ 논란에 휩싸이며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치 신인 대선 후보, 30대 당 대표가 ‘다툼’, ‘잠행’, ‘극적 회동’이라는 옛날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대화와 타협의 새 정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국민의힘이 갈등을 봉합하는 사이 최대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던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박빙 상황이 됐다. 국민의힘 스스로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 한줄 남기고 사라진 당대표

대선을 100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당대표가 사라졌다. 매일같이 글이 올라오던 이 대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감상 한줄만 남았다. 이 대표가 공개일정을 취소하고 잠행을 시작하자 온갖 추측만 난무했다. 갈등의 당사자인 윤 후보도 “자세한 이유는 만나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며 원인을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측 핵심관계자) 논란이다. 이 대표는 잠행 3일 만인 지난 2일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발로 언급되는 여러 모욕적인 발언들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특히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이에 대해서는 인사조치가 있어야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후보에게 어떤 걸 요구한 적도 없고 상의한 적도 없기 때문에 우리 간에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른바 ‘이준석 패싱’ 논란 역시 원인으로 추측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이 지적됐다. 이 대표는 이 교수 영입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또 윤 후보의 충청지역 일정을 이 대표와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원인으로 꼽혔다.

이 대표는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않고 ‘잠행 아닌 잠행’을 했다. 그의 행로가 부산, 순천, 여수, 제주, 울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공개됐고, 심지어 각 지역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방문했는지도 알려졌다. ‘일정이 공개된 잠행’이 사실상 윤 후보를 향한 시위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행보는 대선 후보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직접 달려오게 만들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소장은 “당대표와 대선후보 간 갈등이 있든 없든 이렇게 공개적 파장을 만드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라며 “정치권의 이러한 행보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염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재유행 문제로 온 나라가 위기인 상황에서 유력 대선후보와 야당 대표가 그럴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의 행보는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면 자신의 정치도 끝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을 보면 상징성도 없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필요성도 결여돼 있어 위기감을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선거에서 지기보다 무엇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리더십 문제 노출한 대선후보

이 대표가 무언의 실력행사에 나선 것과 달리 윤 후보의 처음 반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실제로 윤 후보는 지난 1일 천안 독립기념관을 둘러본 후 “민주적 정당 내에서 다양한 의견 차이와 이로 인한 문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무리하게 연락을 하는 것보다 당무에 복귀하게 되면 얼마든지 (대화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 3일 오전 윤 후보는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긴급 선대위 회의를 연 뒤 “이 대표를 만나고 싶다. 이 대표와 만날 때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했다”며 “우리 정당사에 가장 최연소고,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젊은 당대표와 대선 후보로서 함께 대장정을 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2시40분쯤 이 대표가 제주에서 울산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차량을 이용해 울산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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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운데)가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과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공개 선대위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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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의 변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상황 오판’을 지적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윤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지지율이 40% 가까이 나오고 정권심판론도 우세하다 보니 자신의 방식대로 대선을 치러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당장 이 대표와의 문제를 봉합하지 못하면 2030 세대의 이탈 뿐만 아니라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권력 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후보의 상황 판단을 우려한 목소리는 또 있다. 신 교수는 “윤 후보가 정치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정치를 두려워해야 하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도 유리한 것만 보지 말고 좀더 분석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당선 가능성’과 ‘후보에 대한 지지강도’ 부분이다. 이는 실제 지지 후보와 관계없이 유권자들이 생활하며 느끼는 특정 후보에 대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선거에서는 이를 ‘바람’으로 표현한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과 지지강도가 윤 후보보다 높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윤 후보에게 유리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KBS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와 이 후보는 35.5% 지지율로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당선 전망에서는 이 후보가 42.4%, 윤 후보가 40% 지지율을 획득했고, 지지강도에서도 이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78.2%)이 윤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73.8%)보다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이러한 경향은 MBC, SBS 등의 의뢰로 진행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지지율이 역전된 조사도 있다. 채널A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한 조사에서 이 후보가 35.5%, 윤 후보가 34.6%의 지지율을 얻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오차 범위 내 접전이지만 추세로 보면 윤 후보는 지난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지속적 하락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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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만찬 회동을 하기 위해 서울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난 모습/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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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줄곧 인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자녀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장제원 의원, 김성태 전 의원 등을 기용하려고 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들은 모두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이는 검찰의 상명하복식 인사에 익숙한 윤 후보가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권의 인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통령은 후보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범위의 인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우려는 깊어진다. 최 교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정치적 조언을 받고, 합리적 판단을 했다면 이러한 인사 문제는 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 후보는 본인이 한 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함께 가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정치에서 이러한 태도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울산 방문으로 국민의힘 내부 갈등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들은 향후 지속적인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당장 김 전 위원장과 사실상 원톱으로 선대위를 이끌고 있던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부터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또 직접 찾아가서 달랜 이 대표와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숙제가 됐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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