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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심부전과 살아가기]코로나 시대에 맞이하는 심부전 환자의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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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만으로 68세 때 처음 만났던 환자는 5년 전 다른 병원에서 처음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심한 심장 기능 저하로 심부전을 진단받고, 외래에서 약물 조절을 하던 분이다. 잦은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입·퇴원을 반복하게 돼 말기 심부전과 심장 이식에 대한 상의를 위해 나에게 방문했다.

환자는 아내 그리고 5명의 자녀들과 함께 내원했는데, 가족 모두가 환자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어 하셨다. 잦은 입·퇴원을 반복했고, 심장의 기능을 호전시키는 승압제에 반응을 잘하고, 신장이나 간 기능에 문제가 없던 분으로 심장 이식을 권유 드리게 되었으나 환자분이 극구 거부를 하셨다.
이데일리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이제껏 농사 지으며 잘 살았고, 자녀들이 잘 컸으니 괜찮고, 그리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식은 환자의 의지와 주치의의 판단 그리고 환자와 주치의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현재의 의학적인 판단을 설명 드렸다.

“네. 제가 최대한 잘 돕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심장의 기능은 너무 저하되었고, 수년간 복용하던 약물은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명약이라도 사람을 100살 넘게 살게 하긴 어렵고, 이미 기능을 다한 심장을 더 이상 살릴 방법은 없으니 이식 밖에 방법이 없지만 심장 이식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고, 거부하시니 우선 최대한 약물 치료를 하고, 불편하면 바로 입원하고 최소한 급사 방지를 위해 제세동기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이전에 비해 좋은 약제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 약물 조정도 조금씩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행여나 나중에 숨이 너무 차서 이식을 원하실 경우 다른 장기 손상과 연세가 많아 어려우실 수 있으니 너무 늦지 않게 신중히 결정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환자는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했으며, 승압제만 사용하면 좋아지고, 퇴원하면 다시 소화 불량, 호흡곤란이 발생해 또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했다. 몇 달 되지 않아 자녀분들이 조심스럽게 외래를 방문해 서울의 큰 대학병원으로 가서 다시 의견을 묻고 싶다고 의뢰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다. 심장전문병원을 믿고 찾아왔지만 그래도 이식 외 다른 방법들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고, 다른 곳을 더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흔쾌히, “잘 알겠습니다. 보호자분들 걱정이 많으시죠. 00병원으로 가시면 00교수님께, 그리고 00병원으로 가시면 00교수님께 예약을 잡아 드리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린 후, 원하시는 병원 심부전 담당 교수님께 정성스럽게 의뢰서를 쓰고, 현재 상태를 적었다. 그리고는 따로 연락을 드리고, 예약을 잡았다. 치료받던 주치의가 부족해 병원을 옮긴다고 생각 할까 봐서인지, 보호자, 환자 모두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병원을 나선다.

심부전(心不全·Heart Failure)이란 심장의 기능이 떨어져 몸 전체로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호흡 곤란, 다리 부종, 피로감, 소화 불량 등이 주요 증상이다. 심부전은 단일 질병이라기보단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심근병증, 심장판막 질환 등 다양한 심장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일종의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2600만 명 이상의 심부전 환자가 있으며, 심부전의 유병률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2002년에 전체 인구의 0.8%였던 심부전 진단 환자가 2013년엔 1.5%로 약 2배 증가했고, 현재는 7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부전 유병률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높아진다. 60세 미만에서 1% 정도인 유병률은 60세 이상에서 5.5%, 80세 이상에서 12.6%로 가파르게 상승한다. 연구마다 분석에 포함된 환자군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 심부전 환자의 1년 생존율은 50~70%, 2년 생존율은 30~5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증상이 심한 말기 심부전의 경우, 2년 사망률이 80% 정도로 암 사망률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심부전은 위암이나 대장암 등 대부분의 암보다도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는 제한된 몇 가지의 약제 이외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심부전의 예후를 현저히 호전시킬 수 있는 여러 약제와 시술, 수술법 등이 개발돼 적절히 잘 치료받으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이 오래 살 수 있다. 심부전의 치료 목표는 환자의 증상을 완화하고, 더 오래 살게 하는 데 있으며, 크게 약물치료와 시술 및 수술 치료로 나뉘며, 말기 심부전의 경우 인공심장이라 불리는 LVAD와 심장이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심부전, 심장이식, 희귀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심장 전문의로서, 질병은 정밀 검사를 통해 정확히 진단하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치료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최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심부전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분들을 위해서는 가족을 보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다가가려 노력한다. 심부전은 주치의와 환자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행여나 타 병원으로 가시려는 분들은 각 지역의 최고의 심부전 전문의에게 따로 연락을 드려 보내 드리면서 현재 환자의 상태, 특이했던 점, 주의할 점들을 적어 보내 드린다.

주치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놓칠 수 있는 것. 혹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분들이 찾아 환자를 더 좋은 방향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의사로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개 병원을 더 방문했던 환자의 가족분들은 결국 치료가 다르지 않고, 환자가 나에게 의지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커서 여기서 진료를 다시 받고 싶다며 찾아오셨다. 역시 환자는 다시 안 좋아졌고, 승압제를 쓰면서 이제 이식을 하지 않으면 최소한 급사를 방지하는 제세동기라도 하자 설득을 했지만 그것도 거부했다.

다행인지 병원 내에서 화장실을 가던 중 심실세동이 발생해 쓰러진 환자는 바로 심폐소생술과 전기 충격을 통해 회복했고, 제세동기를 넣고 퇴원했다. 그 사이 심부전 약제들은 몇 가지 더 개발되면서 조금씩 약물을 조정하고, 급성기 증상이 올 때는 빠르게 입원해 치료하고 재활을 하면서 몇 년을 더 버티시고, 가족분들과 시간을 보냈다.

환자를 만난 지 6년이 지난 후, 안타깝게도 폐암이 생겨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지만 잘 넘기셨다. 그렇지만 이후에 심장이 거의 섬유화가 돼 한 달에 두세 번씩 입·퇴원을 반복하고, 숨참과 소화 불량이 지속됐다. 아직 완전히 완치되지 않은 폐암이었기 때문에 인공 심장은 할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만으로 76세가 된 환자는 너무 숨이 차고 소화가 안되어 또 응급실을 통해 내원하게 됐다. 이번에는 간 수치도 100배 이상 상승하고 신장 수치도 많이 오르고, 혈압도 승압제로 겨우 유지가 된다. 아직까지 의식이 있는 환자를 보고, 손을 잡고 이야기 드렸다.

“이제껏 잘해 오셨어요. 그리고 자녀분들도 정말 잘 키우셨고 고생도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더 고통받지 않으셔야죠.”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하루 올라온 환자는 답답함에 어서 병실로 가고 싶다 하신다. 이제 심장은 기능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판단이 들었고 가족분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연명의료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환자가 아직은 의식이 있지만 일주일 내외로 더 나빠져서 사망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돼 극진한 가족분들이 함께 곁을 지켰으면 좋겠지만 코로나 시국에 병원에서는 면회도, 외출도 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 다 함께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선 1인실에서 환자를 모시면서 가족들은 코로나 검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태에서 환자분을 뵙기로 했다.

모두가 환자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고통이 연장될 수 있는 승압제는 중단했고, 환자는 2~3일 배우자와 함께 있으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충분히 하시다가 점차 의식이 떨어지셨다. 의식이 떨어지기 하루 전 쯤 다시 모든 가족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하도록 하고, 병원 내 1인실에서 모두 임종을 지켜 볼 수 있도록 했다. 환자분은 정말 편하게, 아프다는 이야기 없이 숨을 거두시고, 가족분들 모두 함께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장례식장에 찾아 갔을 때, 가족분들 모두 슬퍼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병원 출입도 어려운데 임종을 함께 할 수 있었고,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가시지 않았다고, 덕분이라며 정말 감사해 하는 걸 보니 내 마음도 함께 뭉클하다. 심부전이나 희귀질환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치료하는 전문가지만 열정을 다해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환자를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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