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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어느 청소노동자가 불러온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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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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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덕 님은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라고 말한 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 인터뷰를 마치고 순덕 님과 함께 목마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걷다가 순덕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짱을 꼈다. 27년을 일하면서 이렇게 목마공원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병원 정문 코앞에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고, 항시 동동거리며 지낸 것 같다고 하셨다. “일 얘기를 이렇게 쭉 한 거는 처음이에요. 얘기를 하니까 행복하네.” (이슬아, ‘새 마음으로’, 2021년 헤엄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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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덕 여사는 이대목동병원에서 27년간 일해온 청소노동자이다. 이 중 17년은 병원 청소 구역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다는 응급실에서 일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응급실에 도착하면 전쟁통이 펼쳐진다. 피로 찍힌 발자국과 환자들이 쏟아낸 분비물, 그리고 의료진들이 사투 끝에 던져놓은 수술 장갑과 시트가 낭자하다. 이슬아 작가는 우리의 이 안온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세상 뒤편을 지탱하고 있는 이웃 어른들을 인터뷰했다.

이순덕 여사는 이토록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매주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를 다닌다. 그 자신도 일흔 살의 노인이지만 여든 살보다는 아직 조금 젊기에, 또 혼자 사는 어려움과 고통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독거노인들을 위해 청소하고 밥을 안치고 목욕을 돕는다. 일터 근처 공원을 산책할 여유도 없이 숨 가쁘게 일해왔음에도, 내가 고단하면 남은 나보다 더할 것이라 여기고 타인을 돌보는 삶. 이것은 실로 ‘기적’이 아닌가. 내 노동이 힘겨울수록, 내 삶이 고달플수록 우리는 대체로 타인에게 각박해진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남까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이순덕 여사처럼 내가 힘들기 때문에 남의 힘듦까지 헤아려 덜어주는 사람도 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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