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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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면 북한 매체들은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북한 매체들은 언론이라기보다는 당의 홍보수단에 불과한 기구들이기 때문입니다. 독재체제에 봉사했던 매체들을 민주언론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통일과정에서 수행해야 할 언론통합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언론이 생존하려면 언론사 자체로 생존할 수 있는 수익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기능만 하면 생존은 국가가 책임져줬지만, 새로운 통일사회에서는 이윤추구적인 기업으로 자생력을 갖지 않는 한 언론매체라도 존립이 불가능합니다.
남북한 언론통합은 또 통일 이후의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 밖에도, 북한 지역에 다수의 언론이 경쟁하며 다양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구도가 갖춰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독일, 통일 이후 서독언론 위주로 재편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언론은 서독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신문시장의 사례를 보면, 서독의 거대 언론기업들은 동독 신문들을 인수하거나 협업을 추진했고 동독 지역판을 발행하며 동독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동독 신문들은 국가와 당의 선전매체였던 과거 시스템에서 벗어났지만, 기존 서독 언론기업들의 독과점 시스템에 편입됐습니다.
동독의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반체제지식인들에 의한 대안신문이 창간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신문들은 대부분 폐간됐습니다. 재정적으로 이런 신문들을 지원할 곳도 없었고, 구동독 주민들도 새로운 시민단체 신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방송의 경우에는 과거 동독의 국영방송시스템이 완전히 해체됐습니다. 동독에서 방송되던 DEF1 채널과 DEF2 채널은 통일 이후 종영됐습니다. DEF2 채널은 서독의 ARD 채널로 전환됐고, DEF 소유의 방송시설들은 구동독 지역에 새로 생긴 다수의 지역방송에 활용됐습니다. 동독 주민들은 통일 이후 동독 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새로운 방송이 생기길 희망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서독방송 체제로의 일방적 통합이 이뤄지면서 구동독 지역 내에서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독일 전역으로 시청권이 확대된 서독 방송들이 과거 동독사회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한다든가, 통일문제를 통합이라는 차원보다는 동독체제의 붕괴나 동독사회의 과거청산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불만이 생겨났습니다. 방송의 주도권을 서독인들이 독점함에 따라 동독인들의 상실감이 커졌고,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만 방송통합을 바라봤을 뿐 문화적 관점에서 동독 주민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북한 지역 매체, 통일 이후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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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일시 언론통합 과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할 북한 지역 기반의 매체가 필요하지만,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매체가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당의 선전매체 역할에 충실했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가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에 맞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통일이 되면 수십 년의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남한 언론과 경쟁해야 합니다.
다만, 독일과 남북한의 사례가 다른 중요한 점은 언론이 이제 뉴미디어의 시대에 진입해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이전인 독일통일 시기에는 신문, TV, 라디오 이외의 매체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구분도 명확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고 신문, TV, 라디오 모든 매체가 손 안의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인터넷 기반으로 수렴된다는 것은 대규모 지면발행을 하는 신문이나 별도의 유통체계가 없는 인터넷 매체나 독자 서비스에 있어 큰 차이가 있지 않다는 의미여서, 자본력이 부족한 북한 지역 기반 매체가 자생력을 갖추는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용을 최소화한 경제적인 인터넷 매체를 설립한다면, 북한 지역 기반 매체가 통일 이후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신문처럼 이미 거대한 인원이 종사하고 있는 기존 매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등 쉽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방송의 경우에는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 시대라고 해도 북한 지역 기반 매체가 자리를 잡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상파를 통해서든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서든 방송이 유통되려면, 보도뿐 아니라 교양, 예능, 드라마 등 프로그램 제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당의 선전매체로만 종사해 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없는 북한 텔레비전 종사자들이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는 보도나 예능,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직업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의 경쟁력 확보가 한두 해만에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할 북한 지역 매체를 남겨놓는다는 차원에서 정부가 한시적으로 재정지원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재정지원을 한다면 어느 정도로 할지 지원기간은 얼마나 할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북한 매체(이를테면 조선중앙TV)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KBS처럼 국가가 수신료를 걷어주는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지금도 수신료 징수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지역 TV를 위해 또 다른 수신료를 받는다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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