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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코로나인데 복권 판매는 역대 최대…지갑 닫고 '희망'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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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복권 판매 수입, 전년 대비 약 10% 증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 실업난에도 복권 열풍 지속

"불안한 인생 버티는 낙", "오락 수준이라면 괜찮다"

시민 10명 중 8명은 복권에 '긍정적' 시선

전문가 "젊은 세대, 불평등 심각하다고 봐"

"불황, 취업난 지속되면 요행에 의존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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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기 한파에도 불구, 시민들의 복권 구입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내수 경기가 얼어붙었던 지난해, 가계 복권 지출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감소로 인해 지갑은 닫았던 시민들이 되려 일확천금의 '희망'에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셈이다. 전문가는 경기 불황, 소득 불평등 등의 요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권·도박과 같은 '요행'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한파에도 복권 열풍은 지속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공개한 '2020년도 복권 및 복권기금 관련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기금 수입은 총 6조534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5조4762억원이 복권 판매 수입으로, 전년(2019년) 대비 약 10% 상승했다. 국내에서 복권을 판매해 창출한 수입이 5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의 평균 복권 지출액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지난해 가계는 복권을 사는데 한달 평균 590원을 쓴 것으로 조사돼 지난 2019년(550원)과 비교해 7.2% 늘어났다.

복권 열풍은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분기(4~6월)에는 665원, 3분기(7~9월)에는 844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복권 소비,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증가

시민들의 복권 구입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기 충격과 맞물려 벌어졌다. 통계청 고용 동향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21만8000명 감소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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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연간 취업 자수는 전년 대비 21만명 이상 감소했다. 사진은 실업급여 설명회장에 모인 시민들 모습.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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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많다 보니 가계도 지갑을 닫았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은 240만원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소비지출은 2.8%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복권 구입은 소비 추세를 '역행'한 것이다.

소득이 불안정해지면서 생활고를 겪는 가계가 늘어난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복권을 통한 일확천금의 기회를 '탈출구'로 여기게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국내 소득 분위 중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의 복권 소비는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20% 가구의 올해 1분기(1~3월) 복권 소비 지출액은 월평균 336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9원) 대비 무려 46.7%나 상승했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3분위 가구의 복권 소비 지출 증가율이 9.4%에 그친 것과는 대비된다.

"이런 낙 있어야 불안한 인생 견디죠" 위안 얻으려 복권 사는 시민들

시민들은 자신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복권을 산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요식업을 그만두고 인테리어업으로 전향하기 위해 기능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30대 A씨는 "어차피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복권은 일부러 속아 주면서 사는 거다"라며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 불안한 인생을 버틸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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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을 구매하는 시민들 모습.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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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직장인 B씨는 "매주 로또 번호를 기다리면서 혹시라도 당첨되면 어떨지 상상하는 게 짜릿하다"라며 "가벼운 오락 수준으로 즐기는 수준이라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복권 구입에 호의적인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 '알바천국'이 10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무려 85.5%는 복권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복권 구입을 즐기는 이유로는 '인생 역전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85.5%), '일상 속 재미를 줘서'(59.0%)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미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복권 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한 취업난이 지속되면 복권, 주식 등 높은 리스크를 수반하는 투자로 눈길을 돌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갈수록 소득, 기회, 자산 등 여러 분야에서 불평등이 심각해진다고 보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완화될 가능성이 적다고 믿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복권같은 '한방' 형태의 돈벌이 수단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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