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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데스크 칼럼] 장기투자, 말은 참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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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최근 들어 주식 장기투자자에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다시 힘을 받는 분위기다. 정부가 오는 2023년부터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0% 이상 세금을 물리기로 하면서도 장기 투자자에 대한 혜택은 쏙 빼놓았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까지 나서 장기투자자에 혜택을 주는 게 맞다고 하니 이러한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주식을 사서 오래 묵혀두는 것이 가능할까.

장기투자자에게 혜택을 주자는 이들은 주로 해외 사례를 많이 든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1년 이상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면 차익에 대해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한다. 세율은 소득에 따라 다른데 0%, 15%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경우를 참고하면 장기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언뜻 맞는 말일 것도 같은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세율 조정만으로 장기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순진한 발상에 가깝다.

장기투자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흔히들 수익률이 좋다면 장기투자를 할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A라는 주식이 있는데 1년 뒤 주가가 30% 상승했다고 하자. A 주식을 사 1년 뒤에 팔았다면 성공한 투자라 할만하다. 그런데 A 주식이 중간에 급락했다가 회복해 결국에는 30% 상승한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A 주식을 샀던 투자자 입장에서는 급락장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테고, 버텼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언급하기도 안타깝다.

한국을 대표한다던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1975년 상장 이후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던 삼성전자지만, 2000년에는 단 3개월 만에 주가가 3분의 1 아래로 폭락한 적도 있었다. 삼성전자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코스피지수조차 늘 급등락해왔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자, 아직도 단순히 ‘기업의 성장성을 믿고 장기투자를 하면 세금 혜택까지 주겠다’는 말로 투자자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어디 대안을 제시해보라고 할 텐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고 해도 나라별로 투자자들의 성향이나 자산 구조, 연령, 정부 정책, 과세 기준 등이 상이하니 단순 참고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뭐라도 내놓으라고 한다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증여·상속을 장기투자와 엮어보는 것이다. 자식 사랑이라고 하면 어디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한국인이 아닌가.

일정 금액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자녀는 이 돈으로 주식에 투자한다. 이 주식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하면 상속·증여세를 감면 혹은 면제해주고, 장기투자에 따른 양도세 혜택 역시 부여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노년층에 잠겨 있는 부를 젊은 세대로 이전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동시에 장기투자자 가족에게는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묶인 돈 덕에 증시 변동성을 줄일 수도 있고, 기업들은 자금 조달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속·증여 한도와 장기투자 기간을 얼마로 볼 것인지, 자녀가 없는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신중한 논의가 동반돼야 한다.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아니나, 지난 2015년 일본은 세수 감소를 감수해가면서 세대 간 자산 이동을 추진했다. 돈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편중돼 있는데, 고령화 시대에서 이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젊은 층과 고령층 사이의 자산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조부모가 손주의 결혼, 교육, 출산 등에 비용을 지불할 경우 이에 대해 일정부분 세금을 면제해 줬다. 물려주는 자금 성격에 따라 일괄 증여 시에도 비과세 혜택을 줬다. 이러한 정책 덕에 당시 일본에서는 조부모의 자산이 손주에게로 증여되는 ‘머니 무브’가 가속화했다.

혹자는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면 부가 대물림되거나, 새로운 금수저 찬스가 생길 거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소위 장투(長投)를 권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신박한 정책이 있을까 혼자 생각해보다 나온 아이디어지만, 위와 같은 지적이 나온다면 한소리 들어야지 어쩌겠나. 어차피 정책 입안을 하는 이들은 따로 있으니까.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왕 혜택을 줄 거면 확실하게 주자. 그렇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

하진수 금융증권부장(hj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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