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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솔직하다, 까졌다, 그래서 재밌다…‘연애 빠진 로맨스’ 정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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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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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정 감독 특유의 솔직함과 대담함이 녹아든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는 정 감독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언제나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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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 감독의 영화는 솔직하고 ‘까져서’ 재미있다. 그는 계속해서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24일 개봉한 그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도 그렇다.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도발적인 표현들이 오간다. 무엇보다 대사들이 웃겨서 귀에 착 달라붙는다.

정 감독(31)은 연애사를 주로 다뤄왔다.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에 워낙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그쪽으로 흘렀다. 그가 또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웃기는 일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그의 상업영화 데뷔작이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정 감독은 23일 기자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안 웃기면 죄를 지은 것 같을 것”이라는 말부터 했다. 그는 “웃으실지 안 웃으실지부터 걱정되는 건 코미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서도 “반응이 두렵기도 하고 해외로 피신을 가야 하나 싶다”며 웃었다.

<연애 빠진 로맨스>의 주인공 자영(전종서)과 우리(손석구)는 스스로가 아직 번듯하지 못해서, 아직 자신 삶의 완전한 주인공이 되지 못해서 관계라는 숙제가 따르는 연애는 엄두가 나지 않는 청춘들이다. 하지만 불타는 본능의 부름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둘 다 외로우면서도 ‘연애 말고 섹스가 하고 싶다’며 ‘센 척’ 하는 적극적 자기 기만이다. 데이팅앱 ‘오작교미’가 자영과 우리를 연결한다.

표현이 더 적극적이고 솔직한 건 자영이다. 자영은 연령대별 사랑이 “10대는 머리, 20대는 심장, 30대는 배꼽 밑”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거나 “헬스장 귀염둥이”를 “조만간 자빠뜨릴 예정”이라고 하는 29세다. “2030의 해소되지 않은 성욕이 사회적 문제”라고 술에 취해 일장연설을 하고는 다음날 깨어나 ‘이불킥’을 하기 일쑤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우리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일단 생계를 위해 잡지사에서 대중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33세다. ‘문창과’를 나온 죄로 잡지 구독자 수를 끌어올릴 섹스칼럼 집필을 떠맡게 됐다. 칼럼 때문에 ‘오작교미’에 가입한 우리는 자영과의 이야기를 그의 허락 없이 익명으로 연재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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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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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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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의 대담하고 도발적인 대사들이 재밌다. 자영은 우리에게 “네가 여자라면 너한테 끌릴 것 같아?”라고 물으며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 아니다, 매우 아니다” 다섯 보기를 준다. 우리가 “보통”이라 답하자 자영은 “남자는 자신이 고른 답에서 두 단계 뒤로 가야 한다”는 촌철살인의 말을 날린다. 우리가 다니는 잡지사의 편집장은 걸진 ‘어른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날린다. 배우 김재화의 연기 관록이 빛난다.

정 감독은 자영의 ‘10대 머리, 20대 심장, 30대 배꼽 밑’ 이론을 언급하며 “연애를 하면 머리와 마음과 배꼽 아래가 다 따로 노는 현상이 벌어진다”며 “그래서 혼란스러워지고, 내게 이런 모습도 있네? 하는 새로운 발견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애가 충분히 재밌는 소재”라는 것.

그는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로코’의 차별점은 ‘정(情)’의 개입이다. 정 감독은 “한국 로코에는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안쓰러운 인물이 있다”며 “그 안쓰러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하고, 그래서 마음 아픈 경험을 하고,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정 감독은 그 안에서 웃음과 재미와 감동을 자주 발견했다.

정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이번 영화에서도 애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데 더 솔직하고 대담한 것은 여성 캐릭터다. <밤치기> <비치 온더 비치> 등 전작에서 그런 인물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살아오면서 갑갑함을 느꼈다”고 했다. 여성의 말이 자유로우면 “그 안에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걸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관객들이 (전작들을) 통쾌해 하고 재밌어 하시더라”며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그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이라며 “언제나 발칙한 이야기, 흠칫흠칫 놀라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여성으로서 이 같은 메시지의 화자가 되는 것이 아직 녹록지만은 않을 터. 정 감독은 “발칙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서 살아갈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는 “오해하는 반응도 안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쉽지 않을 것이고, 상처도 많이 받겠지만 그렇다고 괴로워하기엔 쉽지 않은 길”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제 텍스트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또한 하나의 반응”이라며 “이번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었으면 좋겠고, 유머가 긴장을 이완시켰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성적인 이야기가 지나치게 금기시되고, 초·중·고교 시절 받은 성교육도 많이 미진했다”며 “지식이 더 충분했다면 연애 ‘흑역사’나 창피한 기억들이 덜 쌓였을 것이다. 더 자유롭게 연애와 사랑을 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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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정 감독 특유의 솔직함과 대담함이 녹아든 작품이다. 24일 개봉했다. 가운데가 정가영 감독. 왼쪽은 ‘우리’ 역의 배우 손석구, 오른쪽은 ‘자영’ 역의 배우 전종서.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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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2G폰을 써 오던 정 감독은 이번 영화 작업을 하면서 결국 스마트폰 사용자가 됐다. 아직 데이팅앱을 써본 적은 없다. 그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편”이라며 “인터넷 후기와 주변 경험담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다 헤어졌다”고 웃으면서도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걸 느끼게 해준 경험들”이라고 말했다. 주연배우 전종서와 손석구에 대해서는 “모두 가식이 없고 솔직한 걸 좋아해서 스스럼이 없다”며 “그래서 우리 영화 시나리오에 흔쾌히 참여해준 것”이라고 했다.

첫 상업영화 작업은 어땠을까. 정 감독은 “독립영화 작업을 할 때는 독재자처럼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현장경험이 아주 많은 전문가분들과 의견 조율을 계속 해야만 했다”며 “쉽지 않았지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차기작은 <82년생 김지영>을 제작한 봄바람 영화사와 준비하고 있다. 정 감독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재밌는 것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영과 우리는 “이 영화가 연애영화가 될 수 있을까? 헤어지더라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영화를 맺는다. “보고 나면 술이 당기는 영화”라는 정 감독은 “연애든 사랑이든 섹스든 진솔하고 자유롭게 얘기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영화가 재밌으실 것”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 이미 친한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 오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도발적인 대사들 때문에 19세 관람가일 것 같지만 영리하게 줄타기를 하는 대사들 덕분에 ‘안전한’ 15세 관람가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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