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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출범 4년 ‘직장갑질119’…“누적 10만건 상담해, 시즌2는 ‘온라인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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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픈채팅 상담만 8만건…총 4년간 10만 건 상담

·퇴근하고 아기 옆에서 상담, 직장갑질119 이끄는 스태프

·시즌2, ‘온라인 노조’ 운동 앞 둬

직장갑질119가 출범 4주년을 맞는다.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이 단체는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만들었다. ‘일터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어떻게 노조에 참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을 온라인으로 규합하자는 뜻이었다. 현재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 등 노동법률 상담이 가능한 약 140명의 인원이 ‘스태프’로 함께한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노동자들과 만난다. 지난 4년간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이뤄진 상담은 약 8만건이다. 네이버 밴드를 통한 상담은 5000건, 신원이 확인되는 e-메일 상담은 1만5947건이었다. 총 10만 건이 넘는 상담을 해온 것이다.

오픈채팅 상담시간은 평일·토요일 점심과 저녁 시간을 제외한 오전 10시30분~오후 9시 사이다. 공식 상담시간이 아닌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도 ‘톡’은 울린다. 28일 새벽 3시쯤에는 ‘근로감독관에게 e-메일을 쓰느라’ 잠을 못 자고 있다는 사람이 톡방에 글을 남겼다. 새벽 4시쯤 ‘직원을 개 부리듯’ 한다는 회사에 대한 성토 글이 올라온다. 몇 분만 확인하지 않아도 톡은 수 십개가 금방 쌓인다. e-메일 상담은 질문이 아닌 내용을 제외하고 무조건 회신한다. 공식업무가 아님에도 전화상담까지 하는 스태프들도 있다.

상담 활동 외에 관련 연구보고서 51건을 발표하고 설문조사도 25회 진행했다. 보도자료 210건을 작성하고 기자회견은 13회, 토론회는 8회 열었다. 대외 활동을 통해 단체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매일 반복된 활동 속에 성과가 쌓였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됐다. 올해 10월 과태료 부과 의무 등 법의 실효성을 강화한 개정법이 실시됐다.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장기자랑을 강요해 문제가 됐던 한림성심병원 사례, 외주제작 스태프에게 상품권을 임금으로 지급한 SBS의 사례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굵직한 사건들도 직장갑질119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직장갑질119는 불안정한 고용상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소외된 노동자들에 주목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 철폐 등 근로기준법 적용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지원을 위한 운동을 이어갔다.

이제 시즌2를 준비한다. 본격적인 ‘온라인 노조’ 설립 운동이다. 기존의 기업·산별 노조에 속하지 못한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기존의 노조 체계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품는 형태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지난 4년 동안 직장갑질 문제와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비정규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있어서 뿌듯했다”며 “시즌2는 온라인노조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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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 출범 4주년을 맞는 직장갑질 119의 운영위원 김하나 변호사(오른쪽)와 설립 멤버이자 운영위원인 박성우 노무사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한국사회 직장갑질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직장갑질119 출범 4년의 성과와 남은 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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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스태프들은 일부 상근활동가를 빼고는 모두 사실상 ‘봉사’ 형태로 참여한다. 개인 활동 외에 시간을 내서 노무 상담에 참여하는 것이다. 운영위원인 박성우 노무사(48)와 김하나 변호사(36)를 지난 2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박 노무사는 직장갑질119의 시작부터 지켜본 창립멤버다. 그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센터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당시 사무실에는 종종 ‘저 민주노총 가입하고 싶은데요’라는 전화가 울렸다. 박 노무사는 “민주노총은 개별 조합원은 안 받는다. 그런데 전화 주신 분들은 사업장 소속도 아닌 그냥 정말 ‘혼자’인 분들이었다”며 “이런 분들을 위한 노동자 조직에 대한 고민이 있던 차에 권두섭 변호사에게 새로운 방식의 노조를 고민해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를 비롯해 박점규, 오진호 등 노동운동계에서 잔뼈가 굵던 이들이 모여 처음 고민한 조직의 이름은 ‘누구나 노조가 필요해 운동본부’였다. 차별 없는 노동 3권 적용, 온라인을 통한 새로운 노동 운동 등이 논의됐다. 다만, 이 이름으로는 대중에게 각인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민 끝에 ‘직장갑질119’가 낙점됐다. 출범 이후부터 이슈몰이가 제대로 됐다. 각종 직장갑질을 제보받는 오픈채팅방에는 사람이 몰렸다. 당초 오전·오후 2명의 스태프면 충분히 상담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리였다. e-메일 상담까지 늘자 사람이 더 필요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민변, 노노모(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등 단체에서 함께할 사람을 모집했다.

민변 노동위원회에서도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메일을 정기적으로 답신해 줄 사람을 모집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오히려 활동에 대한 욕심이 컸다”며 “임신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이 줄게 되는데, 이 일은 꾸준히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의 공식 상담 방식은 오픈채팅과 e-메일이다. 전화상담은 필수가 아니지만 심도 있는 상담을 위해 스태프들은 종종 상담자와 전화로도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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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e-메일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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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단체 내 최다 전화상담가다. 상담은 주로 업무시간 외에 이뤄진다. 김 변호사는 퇴근시간 시작한 전화상담을 집까지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대리운전을 하는 50대 여성과 통화 중이었다. 그는 남성 운전자들의 따돌림 등으로 힘들어하던 상담자가 집 안에서 들리는 아기 목소리를 듣고 ‘아기가 있나 봐요? 저도 손주가 있는데’라며 정겹게 얘기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메일을 취합해 배정하는 역할을 하는 박 노무사는 “예전엔 휴가를 가도 컴퓨터를 들고 가서 이메일 취합을 하고 배정했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의 휴대전화에는 상담자와 주말, 늦은 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문자를 나눈 기록이 담겨있었다. 그는 상담자가 고맙다며 생일날 선물해준 카카오톡 기프티콘(모바일 쿠폰) 하나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4년 동안 이어진 업무에 피로는 누적됐다. 박 노무사는 “얼굴도 모르는 스태프 140여명이 매일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 한계치에 다다른 것도 사실이라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 역시 “재밌고 보람되지만, 정신적으로 얽매여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담자들이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박 노무사는 “상담자는 부당해고를 주장하지만, 법리적으로는 부당해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얘길 하면 화를 내시는 거다. 보통 직장갑질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오랫동안 고민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더 그럴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동안 노무 상담을 했다. 동료들한테도 ‘친절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친절함보다 상담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법률가라도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어 속상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는다. 김 변호사는 “상담했던 경비 노동자 중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한 분이 있었다. 두 번 세 번 상담해도 해줄 말이 없었다. 마지막 메일에 그분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결국 회사에서는 나가라고 하는데, 저는 갈 데가 없네요’라고 했다. 마음이 정말 아팠다”고 했다. 그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불법 행위의 강도가 세면 형사적으로라도 접근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우리도 위로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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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일 출범 4주년 맞는 직장갑질 119의 운영위원 김하나 변호사와 설립 멤버이자 운영위원인 박성우 노무사가 2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한국사회 직장갑질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직장갑질119 출범 4년의 성과와 남은 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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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이 실시됐다.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고도 조사를 하지 않거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최대 500만원, 사업주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경우에도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가능해진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처벌 조치가 없어 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보완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과태료 규정이 신설됐다는 것은 고용노동부가 각 행위에 대해 개입할 수 있다는 근거다. 엄청난 변화”라고 했다. 박 노무사는 “실효성 문제를 개선한 개정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처벌이 생기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정이 보수적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생긴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가 시즌2로 계획하고 있는 온라인노조 운동에 대해 박 노무사는 “기업에 소속돼 있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함께할 노동조합과 단체의 중간 형태의 조직이었으면 한다”며 “요즘 젊은 노동자들은 이직도 잦다. 좀 더 열린 멤버쉽으로 누구나 쉽게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모습으로 구상 중”이라고 했다. 고민이 없지는 않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가 단체협약 등으로 인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등 조합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일궈냈다면 온라인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를 놓고 내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쉬지 않고 이어온 4년 간의 활동으로 직장 내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높아졌다. 박 노무사는 “직장 내 민주주의라는 게 과거에는 노조를 만들어 노사가 교섭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아니다”라며 “파업이라든지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을 넘어서 새로운 일터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데 결국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직장갑질119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오픈채팅방 등 무료로 상담 받을 수 있는 여러 창구들이 있으니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직장갑질로 자살까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마지막엔 항상 이렇게 말씀드린다. ‘존재보다 직장이 우선일 수는 없다. 직장을 떠나도 바깥이 지옥은 아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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