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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본 112년전 안중근 의거…"반일 근원은 한국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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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외무성 자료 연구서 '그들이 기록한 안중근 하얼빈 의거'

연합뉴스

안중근 의거 112주년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하얼빈 의거' 112주년 기념식에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묵념하고 있다. 2021.10.26 see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인 밀정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배일(排日·일본을 배척함)의 본원(本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 황실이라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일본 총영사 오토리 후지타로(大鳥富士太郞)는 1910년 3월 2일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낸 '한인 근황 보고의 건' 문서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오토리는 "뤼순으로 간 송(宋), 조(趙) 두 밀사는 결코 가짜가 아니다"라며 "작년 니콜리스크시에서 사망한 이용익도 한황(韓皇)의 밀사"라고 보고했다. 한황은 한국 황제로, 고종을 지칭한 용어로 보인다.

그가 문서를 작성한 배경에는 정확히 112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안중근은 오토리의 보고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일본 외무성은 안중근 의거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생산한 각종 문건 1천778개를 모아 '이토 공작 만주 시찰 일건'이라는 자료로 만들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한국역사연구원이 태학사를 통해 펴낸 신간 '그들이 기록한 안중근 하얼빈 의거'는 '이토 공작 만주 시찰 일건' 목록을 싣고, 주요 자료를 번역한 책이다.

책에는 이 교수가 쓴 해설과 김선영 한국역사연구원 간사가 주요 자료 24건을 번역한 글이 실렸다. 원본 사진 파일은 뒤쪽에 포함된 DVD를 통해 볼 수 있다.

일본이 안중근 의거 배후 인물로 고종을 지목했음을 알려주는 문건을 2009년 공개한 이 교수는 해설에서 "서울의 태황제(고종)는 이토의 만주 여행 신문 보도를 보고 이를 처단 기회로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 수록된 문건을 근거로 "안중근의 신병이 일본 법정으로 넘어가자 그를 구하는 국제 변호인단 구성에 소요되는 비용, 안중근 가족 생계를 돌보기 위한 비용 마련을 돕기 위해 서울의 황제는 두 명의 밀사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사형 집행을 열흘 정도 앞둔 1910년 3월 17일 법원에 전할 진술을 남겼고, 일제는 '청취서 - 살인범 피고인 안중근' 문서를 작성했다.

안중근은 "이토 공을 살해하기에 이른 것은 국가를 위해서 한 것으로, 결코 일개인의 자격에서 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통의 살인범으로서 심리돼야 할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이어 "세상 사람들은 이토 공을 20세기의 영웅이라든가 위대한 인물로서 상찬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극히 작은 인물"이라며 "이토 공은 행위가 간악하며 지나치게 완강했다"고 비판했다.

의거의 정당성을 역설한 안중근은 사형장에서도 당당했다. 그 모습은 통감부 통역생 소노키 스에키(園木末喜)가 쓴 '살인범 안중근의 최후'라는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태도는 대단히 침착하여 안색과 언어에 이르기까지 평상시와 조금의 차이도 없이 종용 자약(自若)하고 깨끗하게 그 죽음으로 나아갔다."

256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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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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