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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사망] 신군부 2인자에서 직선제 대통령까지…파란만장한 89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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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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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26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잇는 과도기의 대통령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군사 쿠데타에 가담한 후 정권의 2인자에서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본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8월17일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노 전 대통령의 부친은 면서기였던 노병수씨로 노 전 대통령이 7세 때 별세했다.

대구공산소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공업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약 1년 후 경북중(현 경북고)에 편입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동기생이며 생도 시절 같은 방을 쓰며 친분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1955년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고, 1968년 육군대학을 졸업(중령) 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해 제9공수특전여단장과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역임했다.

1979년 보병 제9사단장(소장)이자 육사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 서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됐고, 1980년 중장으로 진급해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 이듬해인 1981년 대장으로 진급·예편한 뒤 정계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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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1년 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 대장 전역식.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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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에서는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외교담당 정무 제2 장관, 체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선출돼 민정당 대표위원에 임명됐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의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10일 올림픽공원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자신의 대선후보 선출을 계기로 민주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며 6월29일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 8개 항이 담긴 6.29 선언문을 전격 발표했다.

이 선언은 군사정권의 2인자였던 그를 일약 민주화 쟁취의 '조연'으로 탈바꿈시켰고,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며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상했음에도 야권 후보가 분열되는 '행운'도 따랐다.

결국 대선이 '1노(盧), 3김(金)' 구도로 치러지면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민주화 이후 직선제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 된 셈이다.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1988년 2월 제 1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0년 2월엔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기습적 '3당 합당'에 나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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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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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신과 이념이 전혀 다른 정파끼리 합친 탓에 출범부터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삐걱댔고, 끊임없는 계파 갈등으로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결국 임기 중반부터 레임덕에 빠졌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물태우'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통일, 외교 분야에서 혁혁한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련 해체와 동·서독 통일 등 대외 정세가 급변하는 와중에 러시아·중국과 수교하는 등 북방 외교에 적극 나선 것은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과 이후 청사진을 제시한 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점도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1993년 2월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에는 불운한 나날을 보냈다.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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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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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오랫동안 미납 논란에 시달리던 추징금은 지속해서 분납해, 선고 16년만인 지난 2013년 9월 완납했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악화됐고 이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6·29 선언의 주체, 12·12와 5·18의 진실, 3당 합당 과정, 불법 비자금의 용처 등 베일에 가린 현대사의 진실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씨가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사위이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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