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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윤석열의 ‘이상한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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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안락사에 찬성한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나와 몇 마디 나눠보고 안락사를 허용하겠다고 하면 정말 황당할 것이다. ‘왜’를 물으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게 정치다. 고령화, 끝없는 경쟁, 의료비 부담, 가족주의 등 안락사 희망에는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실타래를 풀지 않고 안락사‘만’ 별다른 제약 없이 허용하면 공동체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경향신문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윤석열의 공약은 놀랍다. 120시간을 일해야 하느니, 대학에서 무슨 인문학이니 등 그의 말이 어디서 들은 대로 뱉어지는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하겠다는 다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의견을 취합했다는데, 그걸 어떤 심의도 숙성도 가공도 없이 날것 그대로 정책화한다. 이를 공정이라고 포장하는 나쁜 버릇과 함께.

지난 21일, ‘모든 청년에게 윤석열표 공정을 약속합니다’라면서 발표한 공약에는 성범죄 흉악범 처벌, 권력형 성범죄 근절이 언급되다가 무고죄 처벌 강화가 덧붙여진다. 일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고 철퇴’라고 소개한다. 무고 피해자들을 고려하는 걸 누구도 별거 아니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는 고소를 남발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논해야 하는 독립적인 키워드다. 하지만 이를 성범죄를 언급하면서 같은 무게로 다루면 성폭력 근절은 요원한 일이 된다. 앞으로 피해자는 ‘유죄 판결을 받을 자신이 없다면’ 위험을 감수하기가 어렵다. 진실을 말할 용기보다 확률 싸움에서 이길 조건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상대가 돈도 많고 변호사 구성도 화려하다면, 당연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성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윤석열의 공약은 폭력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는 배경을 차단하는 엉터리다.

어떤 청년이 무고를 성범죄와 연관시켜 주장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게 그대로 정책이 될 순 없다. 누구의 분노가 즉각 해결되는 게 공정한 것이라는 착각은 무섭다. 윤석열식 경청은 건물주의 고충을 이해하는 불로소득 제어 정책, 백인의 기분도 고려하는 인종차별 정책과 같은 문법이다. 난민에 관한 인도주의적 정책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가짜 난민 색출’ 운운하는 것이다. 장애인 정책을 말하면서, 이것 때문에 비장애인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부연설명을 하는 꼴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역차별이라는 의견이 제도로 구축되면 노동의 양극화는 심해진다. 성소수자 인권 때문에 이성애자가 차별받는다는 엉터리 논리를 경청하면 혐오가 춤을 춘다. 역사청산의 의미를 고민하지 않고, ‘전두환 시절도 괜찮았다’는 의견만 경청했으니 시끄러워진 거다.

촉법소년 적용 연령을 낮추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사람들이 청소년 범죄에 분노할 순 있지만, 흥분한 상태의 의견을 정치인이 경청하면 인류가 시행착오 끝에 합의한 ‘탈엄벌주의’는 외면받는다. 대중들의 푸념이 범죄 청소년을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촉법소년 제도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연료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인데, 답답하다.

윤석열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한 걸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은 정치인의 역량이지만, 복잡함을 외면하는 건 국민 기만이다. 특히나 차별과 혐오의 상상력을 동반시키는 정책 발표라니, 끔찍하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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