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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백신 대금 못주면 국영기업도 압류'…화이자 '갑질 계약'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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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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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코로나19(COVID-19) 백신 공급을 주도하는 화이자가 전 세계 각국과 불공정 계약을 맺어온 사례가 공개됐다. 공급 차질에 대한 책임 면제 등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유추 가능했던 계약은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한 국가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 주권 평등'의 원칙까지 무시한 계약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미국 소비자 단체 퍼블릭시티즌이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화이자의 권력'(Pfizer's Power)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화이자가 그동안 세계 각국과 맺은 불공정 계약 사례가 담겼다.

퍼블릭시티즌이 입수한 알바니아와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유럽연합(EU), 페루, 미국, 영국 등이 화이자와 맺은 비밀계약 내용이 이 보고서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 퍼블릭시티즌 설명이다. 다만 이 보고서에 한국의 사례는 담기지 않았다.

퍼블릭시티즌은 보고서에서 화이자가 전 세계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6가지 전술을 일관되게 펼쳤다고 지적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주권 면제(sovereign immunity) 포기 조항이다.

주권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모든 국가의 주권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따라 재판을 통해 내정간섭을 막는다는 취지의 관습법인 셈인데, 이를 백신 계약국으로부터 포기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이 같은 계약이 맺어진 국가는 브라질과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페루 등이었다. 대금 미지급 중재 결정 등과 관련, 각국 자산에 대한 어떠한 주권면제도 '명확하고 취소 불가능하게'(expressly and irrevocably)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 국가들 중 페루를 제외한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에는 자산 압류도 주권면제 대상으로 명시됐다. 항공사 등 일부 국영기업도 압류 대상이 되는 셈이다.

화이자의 지적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계약 상대국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제 3자가 화이자 백신의 지적재산권 침해를 주장할 경우 화이자와 백신 공급계약을 맺은 국가가 이에 대응하고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는 것.

어떤 공급 계약의 변경에도 동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차라리 그동안 세계 각국의 백신 공급차질 관련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밖에 사전 서면 동의 없이 계약에 관한 공개 발표를 하거나 화이자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과 화이자 백신을 계약국이 제3자로부터 사거나 공여받는 것을 막는 조항 등이 있었다.

피터 메이바덕 퍼블릭시티즌 이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은 것을 희생했다"며 "하지만 화이자는 부족한 백신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선택의 여지가 적은 사람들로부터 특권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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