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美 “우크라 지원할테니 먼저 부정부패 개혁하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간? 불안 달랜 美

“공짜는 없다”… 우크라에 고강도 개혁 주문

부패한 동맹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프간서 뼈저리게 배운 美 태도 달라졌다

세계일보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안드리 타란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단, 그러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개혁에 진력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넘어가지 않게 충실한 군사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개혁’을 조건으로 내걸어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부정부패가 극심했으며 지금도 군수업체와 정부 관계자 간의 유착 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간? 불안 달랜 美

오스틴 장관은 19일(현지시간) 키예프에서 안드리 타란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만나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강제로 병합된 사실을 언급한 뒤 “그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는데 25억달러(약 2조9400억원)를 지원해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변함없다”며 “러시아가 크림반도 점령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했던 약속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잡은 뒤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다. 아프간 붕괴 당시 동유럽에선 ‘다음은 우크라이나 순서’라는 루머가 파다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반군을 선동해 내전이 확대되고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가 무너질 것이란 의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불안을 호소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원을 굳게 약속했다.

◆“공짜는 없다”… 우크라에 고강도 개혁 주문

다만 오스틴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방침을 밝히며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이(미국의 지원)를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과 미국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심도있고 포괄적인 개혁(deep and comprehensive reforms)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軍)에 대한 문민통제 강화, 국방산업 분야에의 글로벌 표준 도입, 그리고 제대로 된 인적자원의 체계적 관리 등을 주문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 군수산업이 소련 전체 군수물자 생산의 30∼40%에 이르렀을 만큼 군수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자연히 독립 후 군수업체와 정부 공무원 간의 유착 등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고 자국 내 분리독립 세력과 내전을 치르느라 군대 규모가 비대해졌고, 문민 관료나 정치인을 대신해 고위 장교들이 군과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여기에 경제의 장기침체로 항공우주·기초과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원, 기술자 등 고급 전문인력이 해외취업 또는 이민을 선택하며 인력과 국부의 유출이 심각하다. 미국의 요구는 군사원조를 받는 대신 이런 부조리부터 먼저 시정하라는 것이다.

세계일보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앞줄 오른쪽)이 안드리 타란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함께 우크라이나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패한 동맹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미국은 그냥 조건만 내걸지도 않았다. 오스틴 장관은 “미국은 강력한 자문 노력(advisory effort)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개혁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돕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돌려 말하면 우크라이나가 개혁을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미국인 고문들이 곁에서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아프간에서의 실패로부터 미국이 톡톡히 배운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의 탈레반 세력을 무너뜨리고 친미정권을 세운 이래 거의 20년간 아프간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부었다. 특히 아프간에 제대로 된 군대와 경찰을 세우겠다며 막대한 양의 무기와 각종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밝히며 “미군의 훈련을 받고 미군 장비로 무장한 아프간군이 탈레반에 맞서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얼마 안돼 허언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프간군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데 급급했고 탈레반은 지난 8월 손쉽게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무능 탓에 미국의 지원이 소용없게 돼 버렸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거나 부패하고 무능한 나라까지 미국이 안보를 책임질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