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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플랫폼 노동 등 고용형태 다양화 따라 단체교섭하는 ‘사용자 개념’ 확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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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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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모빌리티 앞에서 ‘대리운전노동자 생존권과 플랫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카카오모빌리티 성실교섭 촉구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를 마친 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불응하다 최근 응하기로 결정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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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플랫폼 노동 등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는 사회 변화에 맞춰 단체교섭 의무를 갖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택배사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서울대 법학연구소·서울대 노동법연구회·한국노동법학회는 지난 16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2021년, 단체교섭’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앞서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가 맞고, 따라서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택배기사는 대리점주와 화물운송에 관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CJ대한통운과는 직접 계약관계가 없지만,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며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사용자로 봤다. 이 판정 이후 경영계는 다른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일각에선 중노위 판정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 판정과 관련해 헌법상 단체교섭권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헌법이 단결권·단체행동권과 함께 단체교섭권을 노동3권으로 규정하지만 그동안 단체교섭권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해 대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과 이번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서 단결권·단체행동권 뿐만 아니라 단체교섭권도 헌법 규정만으로 직접 법 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중노위 판정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사용자 개념을 중노위가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했다.

오히려 윤 연구원은 기존 대법원의 사용자 개념이 새롭게 나타나는 고용형태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판례에 의하면 사내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와 원청, 긴밀하게 얽혀있는 자회사 노동자와 모회사는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택배와 같이 지배기업(택배사)이 공급사슬을 통해 전체를 통제하면서도 운송사업은 외부기업(대리점)에 맡기는 경우는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의 전체 기능이 하나의 사업주로 포괄돼있었기 때문에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을 사용자로 봐도 됐지만, 최근에는 회사의 핵심적인 기능까지도 외부기업으로 분할되고 사업주도 여럿으로 나뉘는 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윤 연구원은 “사용자 개념에 ‘자신의 사업장에서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는 경우’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사업의 측면에서 지배력이 어떻게 관철되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그러면서 미국·유럽에서 법적 다툼 중인 우버 사례를 들었다. 우버가 자신들이 운송업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사람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IT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사용자성 인정의 핵심은 ‘우버의 사업이 무엇이냐’라고 했다. 윤 연구원은 “유럽에서는 공통적으로 우버는 IT 사업이 아니라 운수회사라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며 “운수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버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원청의) 지배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게 프랑스 판결이고, 우리도 이런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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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관계자 등이 CJ대한통운 단체교섭 거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조항을 살펴보면 애초에 단체교섭이 근로계약을 반드시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노동조합법 제29조1항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교섭의 상대방에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사용자 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사용자단체’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조가 2개 이상인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노동조합법 제29조의2도 마찬가지다. 근로계약 체결 여부에 따라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노위가 판정에서 지나치게 사용자 개념이 넓어지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중노위는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 외에, 사용자의 조건으로 ‘근로자의 노무가 사용자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그 사업체계에 편입돼있는지 여부’, ‘근로자의 노동조건 등을 단체교섭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정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을 내세웠다. 반대로 말하면 중노위 판정에 의하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필수적인 업무를 하청이 제공하는 경우는 전문성이 있는 업무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비숙련적인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하청 노동과 같이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하청 근로자에 대해서는 원청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며 “단순 업무를 부담하느냐, 고도의 기술적 업무를 부담하느냐에 따라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 유무가 결정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원청의 사업 수행에 상시적이고 지속적인지 여부만 봐도 충분히 사용자 개념의 부당한 확대를 막으면서 동시에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특정하게 위치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다만 이같은 의견들이 여전히 사용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고, 기준이 추상적이라 실무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임상민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계약 관계를 떠나 지배결정권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면 근로기준법을 정하는 국회도 단체교섭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며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력을 이용하는 경우까지 (사용자에) 포함시키면 (근로자가) 모든 자신의 상층을 향해 교섭할 수 있다고 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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