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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스페인 최고 문학상 탄 여성, 알고 보니 '남자 셋'…"사기극"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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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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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몰라라는 여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두고 활동해온 호르헤 디아즈, 어거스틴 마르티네즈, 안토니오 메르세로가 소설 '야수'(The Beast)로 스페인 최고 문학상인 플라네타를 수상했다. 100만유로(약 13억8000만원)에 달하는 상금은 3명이 나눠 갖는다./사진=AF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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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최고 문학상인 '플라네타'(Planeta)를 수상한 여성 작가가 사실은 '3명의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여성 대학교수로 잘 알려진 카르멘 몰라(Carmen Mola)라는 필명의 작가가 쓴 소설 '야수'(The Beast)가 플라네타를 거머쥐었는데, 시상식 당일 여성이 아닌 3명의 남성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몰라가 여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의 정체는 호르헤 디아즈(Jorge Diaz), 어거스틴 마르티네즈(Agustin Martinez), 안토니오 메르세로(Antonio Mercero). 40~50대의 남성들로 누구도 학계에 몸담은 적 없었으며 다만 모두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당번 약국'(Farmacia de guardia) 등 코미디 장르 드라마를 쓴 바 있다.

디아즈는 시상식에서 "우리가 말해온 모든 거짓말처럼 몰라는 대학 교수 역시 아니다"라며 "우리는 4년 전 어느날 우리의 재능을 모아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한 3명의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마르티네즈는 스페인 통신사 EFE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있어서 공동 작업은 미술이나 음악에서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들은 100만유로(약 13억8000만원)에 달하는 플라네타 상금을 3분의 1로 나눠서 갖게 됐다. 이는 노벨문학상 상금인 1000만크로나(약 13억8000만원)와 거의 맞먹는 것으로, 문학상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대학 교수이자 어머니'…마케팅에 이용했나

굳이 몰라라는 여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두고 활동해온 데 대해 이들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저 재미를 위해 우연히 선택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메르세로는 스페인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된 필명이 남성 필명보다 더 인기를 끄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며 "우리는 여성 뒤에 숨은 것이 아니라 이름 뒤에 숨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이 몰라에 여성 대학 교수이자 어머니라는 서사를 부여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페인 정치인 베아트리즈 히메노(Beatriz Gimeno)는 트위터에 "여성 필명을 사용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은 몇 년 동안 (그 필명으로) 인터뷰에 응하며 시간을 보냈다"며 "단지 이름이 아니라 독자와 언론인에게 가짜 프로필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사기"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들이 만든 몰라의 홈페이지에는 한 여성이 카메라를 등지고 서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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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르멘 몰라 관련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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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엘문도는 "여성 대학 교수이자 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오전에는 '대수학'(Algebra) 강의를 하고 오후에 자유 시간마다 틈틈이 소설을 쓴다는 게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적었다.

실제로 지난해 스페인의 한 여성 단체는 '몰라'의 3부작 소설 중 하나인 '소녀'(The Girl)를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작품이자 "여성이 처한 현실과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하며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여성 경감을 주인공으로 하는 3부작(부별로 이름이 다름)의 이 소설은 다국적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출판해 20만부 이상 팔렸고, 11개국어로 번역됐으며, 드라마로도 방영되는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플라네타를 받은 '야수'는 이와는 다른 이야기로서, 183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콜레라가 유행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살해된 사건을 다룬 역사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다. 아직 출판되지 않았으며, 출판권은 플라네타가 가지게 됐다.

이지윤 기자 leejiyoon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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