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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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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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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스텔린의 유리주택 스케치. 핀스텔린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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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헤르만 핀스텔린(1887~1973)은 실로 특이한 경력의 건축가였다. 그는 뮌헨에서 태어나 물리, 화학, 약학을 전공하였으나 어느 날 문득 바이에른 알프스 정상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가로 전향하였다. 20세기 초반, 당시의 전위적 건축가이자 바우하우스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를 만나 건축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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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 건축가


그는 생전 많은 건축구상을 하였으나 한 점도 실현되지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세상에 주목을 받는다. 아름다운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비록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에 걸쳐 많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적인 자동기술법 그림처럼 그의 도발하는 디자인은 전통적인 건축이 가진 벽, 지붕, 창문과 같은 고정개념을 완전히 흐트러트린다.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동물의 신체 구조와 형태에 매료되어 있었다. 거북이의 등, 새의 날개, 물고기의 아가미 등 다양한 자연의 형태를 디자인으로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러한 매력적인 형태의 핵심은 늘 건축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경계의 한계를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당시는 직교체계의 효율과 산업화한 대량생산에 모두가 주목하고 열광한 시대였다. 이러한 근대주의, 기술주의의 미학들은 핀스텔린에게 있어 끔찍할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한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시대의 기준에 반기를 들고 보다 상상력과 모험심이 넘치는 건축을 꿈꾸었다. 특히 ‘흐름’ ‘변화’ ‘혼성’과 같은 주제어를 통해 그는 더 인간 중심적이고 개성적인 생활을 주택에 담고자 하였다. 오늘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서울 식물원 등 이른바 비정형 건축물은 우리 흔한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 속에서 그의 이상들은 한낮 공상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문명의 진보는 새로움을 갈구하는 선구자들이 시대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상상력을 불태운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핀스텔린과 그의 동료들이 당시 부정했던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성취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설계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한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집의 기술적 가능성에 관해 묻습니다. 나는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오래된 잉카의 거대한 도시, 인도의 단일 암석 사원은 고대 인류의 의지가 세운 불가능의 건축이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분명 새로운 이상이 새로운 기술을 만든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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