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중인 영화 필름 하드디스크에 담아 숨기기도"
"탈레반 말과 행동 달라…과거 통치 재현 걱정"
아프간 카불의 국립음악원의 내부를 살펴보는 탈레반 대원. [AP=연합뉴스] |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 후 공포정치 도래를 우려한 현지인들이 그림을 땅에 파묻고 책을 숨기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29일 기사에서 이런 아프간 문화예술인들의 최근 모습을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 화가는 지난달 중순 그의 작품 15점을 갤러리에서 수거한 뒤 관공서 지역에 파묻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기 사흘 전 일이다.
그림에는 탈레반이 금기시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이후 집을 떠나 친척 집의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영 영화사 아프간필름 전 대표 사흐라 카리미는 제작 중이던 영화 20여편의 필름 등을 하드디스크에 담아 모처에 숨긴 뒤 해외로 몸을 피했다.
카리미는 "하드디스크에는 프로젝트 결과물, 사진 등 지난 2년간 활동 내용이 담겼다"며 "탈레반이 이를 발견하면 파괴해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서점 주인은 성경 등을 책장에서 빼 다른 곳에 숨겼다.
그는 "이제 믿을만한 이에게만 성경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무심결에 이슬람 경전인 쿠란 위에 다른 책을 얹어뒀다가 탈레반 '도덕 경찰'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음악인들도 악기를 숨기거나 상당수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극단적으로 사회를 통제했다. 음악, TV, 인터넷, 오락 등을 금지했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등 공개 처형도 강행했다.
이번 재집권 후에는 아직 음악 등 예술 관련 허용 범위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정상국가' 지향을 내세운 탈레반은 인권 존중 등 과거보다는 유화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인터넷, TV 등은 허용되는 분위기다.
아프간 국립 음악원에 총 들고 앉아있는 탈레반 대원 [AFP=연합뉴스] |
하지만 최근 여성 교육과 취업을 제한하는 강압적 조치가 나오는 등 탈레반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전 정부의 여성부는 폐지됐고 과거 도덕 경찰로 활동하던 '권선징악부'가 부활하기도 했다.
탈레반 대변인인 빌랄 카리미는 "샤리아에 따라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예술 형태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과거의 공포정치가 다시 펼쳐질 가능성을 걱정한 문화예술인들이 미리 몸을 사리는 것이다.
유명 화가인 지아는 "지금까지는 탈레반의 행동과 말에 차이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림과 조각 등 60여점을 숨긴 후 은신 중인 그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도 신분 노출을 우려해 성만 언급했다.
카불미술협회장인 사피울라 하비비는 예술가들은 탈레반이 1990년대에 저질렀던 일을 거듭하리라 생각한다며 "당시 탈레반 통치기 때는 예술에는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coo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