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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왜 나를 파괴하려 하나”…중국 뒤흔든 ‘미투’ 아이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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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샤오쉬안(필명 시앤즈)이 14일 베이징 법원에서 공판 전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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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아까 계속 울고 있어서요.” 중국 ‘미투’ 운동의 아이콘 저우샤오쉬안(周晓璇ㆍ28)은 27일(현지시간) B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목이 잠긴 상태로 이렇게 말했다. 저우는 지난 2018년부터 중국 국영방송 CCTV의 간판 진행자 주쥔(朱軍ㆍ57)을 상대로 3년간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지난 14일 증거 불충분으로 패소했다. 이를 놓고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 미투 운동의 명백한 좌절”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21살 인턴, 간판스타에 추행 피해



본명보다 시앤즈(弦子)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저우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21살 대학생이던 지난 2014년 작가를 꿈꾸며 CCTV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전 국민의 스타였던 주쥔과 인터뷰할 기대감에 대기실을 찾으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주쥔이 반항하는 저우의 몸을 더듬으며 강제로 키스하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이 오갈 때 잠시 멈추긴 했지만, 그의 추행은 50분간 계속됐다고 한다. 너무 무서워서 얼어붙었던 저우는 주쥔이 다른 직원과 이야기하던 틈을 타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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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지지자와 함께 베이징 법원에 들어서는 저우(왼쪽).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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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쥔은 1997년부터 20년간 중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설날 TV쇼인 ‘춘완’(春晩) 등을 진행한 간판스타로, 중국 정부의 최고 정치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지냈다. 이런 거물에게 저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주쥔의 평판을 망칠 수 없다”며 묵살했다고 한다. 이후 저우는 침묵을 택했다. “주쥔을 자극했다간 방송계에서 일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러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일자 용기를 얻어 SNS에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주쥔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저우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저우는 당시 성희롱을 금지하는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어 가장 유사한 ‘인격권 침해’로 맞서면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저우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본업은 극작가였지만, 3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SNS에서 미투 전도사가 됐다. 하지만 이런 활동도 자유롭지 못했다. 검열 당국은 저우의 웨이보 계정을 차단했고,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계정까지 차단되면서 더욱 고립됐다.



“중국사회 분열” 비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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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의 지지자들이 14일 베이징 법원 앞에서 모여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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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에 대한 비난 여론도 커졌다. 일부 블로거들은 “저우가 논란을 자극하려고 외국 세력과 공모했다”고 했고,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즈는 이번 사건을 두고 “서방 세력이 중국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 미투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우 측에선 “법원 판결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반박한다. 지난 1월 개정된 민법에 따라 ‘성희롱’ 소송으로 변경해달라는 요청도 묵살하고, 당시 대기실 외부 CCTV 증거를 추가로 확보해달라는 요청도 거부하는 등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진행됐다면서다.

저우의 좌절감은 컸다. 21살이었던 그는 이제 28살이 됐고, 3년에 걸친 법적 공방으로 많이 지쳤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다시는 극작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저우는 “상처받았다는 말도 못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를 파괴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정의 구현에 어느 정도의 진전을 이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우리가 함께 버틴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승리한 것”이라며 “우리가 쏟았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1초도 없다”고 강조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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