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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영화로운] 새터민 삶 제대로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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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마린 보이'

편집자주

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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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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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음표로 가득한 악보와도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떠듬떠듬 연주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영화 ‘국경의 남쪽’(2006) 속 김선호(차승원)의 대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입니다. 지난 추석 연휴 직전 공개됐는데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넷플릭스 전체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는데, 한국 드라마로는 최초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을 비롯해 홍콩,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베트남 등 2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2위에 올랐다니 대단한 성취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456억 건 서바이벌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 첫 美넷플릭스 1위).

‘오징어 게임’에선 이주노동자와 노인 등 그동안 한국 드라마가 소홀히 했던 인물들이 주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새터민 새벽(정호연)의 비중은 눈 여겨 볼 만합니다. 하지만 새벽의 개인사나 새터민의 불우한 현실은 면밀히 묘사되지 않습니다. 새벽은 북에서 데려와야 할 가족이 있어 범죄의 수렁에 빠졌고, 빈곤에 시달린다는 식으로 표현됩니다. 새터민은 으레 그렇다는 듯 전형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새터민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마린 보이’(2017)의 주인공 박명호씨의 삶은 우리에게 새터민의 여러 면모와 더불어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탈북 후 남한에서 착근하려는 박씨의 모습은 새터민들의 일상과 고민을 대변하는 동시에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①머구리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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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박씨는 강원 고성군 대진항 인근에 살고 있습니다. 대진항은 동해 최북단 항구입니다. 조업 중 배로 빠르게 1분 정도를 내달리면 월경이 가능할 정도로 북한이 지척입니다. 박씨의 직업은 머구리입니다.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 깊이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합니다.

언뜻 보면 간단한 노동처럼 보이지만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배와 연결된 공기호스 하나에 의지해 작업합니다. 공기호스가 프로펠러 등에 의해 자칫 잘리면 바로 죽음 문턱까지 내몰릴 수 있습니다. 잠수복장은 60㎏ 가량. 몸무게까지 합하면 120㎏은 족히 되니 조난당하면 혼자 해수면 위로 떠오를 수가 없습니다. 잠수복을 벗는 것조차 힘겨우니 스스로 바닷속을 빠져 나오기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직업병인 잠수병이 언제 몸을 공격할지 두렵기도 합니다. “머구리는 저승 가서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박씨는 드물게 가족과 함께 북한을 빠져 나왔습니다. 2006년 5월 아내 김순희씨, 두 아들과 배를 타고 밤새도록 노를 저어 서해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6,7년 동안 가족이 상의하고 고민한 후 결행한 탈북이었습니다. 박씨는 “이것 저것 하다가 안되면 머구리를 할 것이다”고 마음 먹었는데, 결국 남한에서 머구리를 생업으로 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 군대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머구리 일을 배웠습니다.

②평범한, 평범치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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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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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남한 내 삶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전쟁 치르듯 다른 배들과 해산물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칩니다.

박씨가 10년 남짓 성실하게 일해온 덕분에 살림살이가 제법 넉넉해 보입니다. 꽤 넓은 집에서 살고 있고, 장성한 두 아들은 외지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철훈씨는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곧 떠날 예정입니다. 김순희씨는 횟집을 열려고 합니다. 박씨 혼자 벌어서는 생활비를 충당키가 만만치 않고, 머구리 일은 언제 그만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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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박씨의 생활은 평범해 보이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평범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박씨 가족을 애써 반기지도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북에서 왔다는 점 때문입니다. 박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 여기 분들이 우리를 보는 눈길은 오직 측은, 동정, 이거였어요. 그 다음에 우리가 좀 나아가서 자기 사업하고 그 다음에 거기서 좀 더 치고 올라가니까 제어를 하려고 그러더라고요.”

③탈북 때와 다를 바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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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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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을 향한 눈길이 곱지 않으니 박씨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암초를 만나곤 합니다. 박씨는 자신이 소유한 배에 선장을 고용해 조업에 나섭니다. 한번은 선장에게 싫은 소리를 쏟아냈는데, 선장이 바로 그만 두겠다고 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박씨는 사람을 고용하기도, 그들과 오래 일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탈북자 선주 밑에서 일하는 것을 이 사람들은 뱃놈 인생 막장이라고 하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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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믿은 건 가족이고 그나마 처지가 비슷한 새터민 정도입니다. 새로 연 횟집에 손님이 잘 들지 않자 김씨는 “우리가 (남한에서) 왜 못 태어났을까, 여기서 태어났으면, 친구 친척들 있었으면 이럴 때, 어려울 때 의지가 되잖아”라고 말하면서 서러움을 드러냅니다. 강원 동부 지역 거주 새터민들을 위해 마련된 송년회에서 한 새터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아, 대한민국!)라고 노래하고 사람들이 곡조에 맞춰 춤을 춰도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그리 친절하거나 온유한 조국은 아닙니다.

④그들을 알아야 북한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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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탈북한지 10년이 됐으나 남한 문화가 여전히 낯섭니다. 추석날 아침 태극기를 밖에 걸려다가 아내의 타박을 듣습니다. 주요한 날에는 빠지지 않고 국기를 걸어야 했던 북한에서의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거죠.

영화에선 묘사되지 않지만,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가 탈북을 결심하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정보가 남한의 쌀값이었다고 합니다. 쌀값을 제대로 알면 남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한 라디오를 수년간 몰래 들어도 쌀값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남한에선 쌀값이 생활의 큰 변수가 아니니 대중매체에서 관련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듯합니다. 거창하게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말하기 이전에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의 일상에 대한 시각 편차가 얼마나 큰지 새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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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 마린 보이'. 영화사 님아 제공


가족을 위해 꿋꿋이 일하며 강한 면모를 과시하던 박씨는 다큐멘터리 막바지에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토로합니다. “지금도 북한을 넘어오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날하고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우리(가족)는 여전히 남한에서 불안하고, 나는 아직도 늘 위험하고…”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2,706명)을 기점으로 탈북자가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나 한 해 탈북자는 여전히 1,000명 가량입니다. 지금까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수는 총 3만3,752명입니다. 북한과 여전히 왕래가 거의 없다지만 북한은 현실이고, 새터민 역시 현실입니다.

최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2년 60억 원 수준이던 남한 내 북한주민 재산은 현재 445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북한주민 남한 재산 10년 만에 7배... "유출 위험 차단" 법 개정 추진). 남한 거주 이산가족 1세대의 사망과 탈북민의 국내 입국 증가에 따른 현상이라고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연계가 우리도 모르게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새터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북한과의 관계를 되짚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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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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