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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D.P.'·'오징어게임'…넷플릭스 韓투자 연타석 홈런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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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500억'…넷플릭스 통 큰 투자 결실

디피(D.P)에 오징어게임까지 연타석 흥행

프로젝트당 200억 지원+창작의 자유는 덤

국내 콘텐츠 시장 한단계 끌어올렸다 평가

넷플릭스 사례…국내 OTT에 적잖은 과제

이데일리

탈영병을 잡는 헌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사진=넷플릭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5500억원.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Netflix)가 연초 국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금액이다.

어지간한 중견 기업 하나를 인수할 수 있는 돈 보따리를 1년 새 풀어놓는다고 하니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를 석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는 국내 콘텐츠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가입자 증가라는 본연의 목적을 해결함은 물론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해갈하지 못했던 ‘창작의 자유’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고 있다. 이는 후발 주자격인 웨이브나 티빙, 왓챠 등 국내 OTT업체들에게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투자는 가시적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서비스 업체인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인의 넷플릭스 결제금액은 753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지난해 8월 424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78% 성장한 수치다. 시청자로 분류되는 결제자 수도 작년 8월 316만명에서 올해 8월 514만명으로 63%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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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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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서 연달아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를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탈영병을 잡는 헌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디피’(D.P)와 국내 제작 콘텐츠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디피는 그간 미화되거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군대 내부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적나라한 묘사에 군필자들을 중심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온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국방부의 설명처럼 ‘만연했거나 일반적인 묘사’라고 할 수 없지만 적잖은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디피의 여파는 콘텐츠 업계를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퍼졌다. 다가오는 국감에서 다뤄질 주제로 사실상 ‘찜’한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디피라는 작품 제작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방송사가 이 정도 수위를 다뤘다면 국방부 또는 그 윗선이 나서 적극 방어하고 내용 수정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순수 외국 자본이 돈을 대니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제작에 나선 결과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오징어게임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9년에 오징어게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넉넉지 않던 형편에 ‘거액을 주는 게임에 제안을 받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를 휩쓸고 있는 오징어게임이 12년 넘게 콘텐츠 업계에서 표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저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주목할 부분은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 제작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공개 후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진다’는 일각의 평가에도 ‘재밌을 것 같다’며 제작을 지원했고 결과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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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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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주목할 점이 앞서 언급한 자금이다. 디피와 오징어게임에 넷플릭스가 지원한 자금은 각각 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9부작인 오징어게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22억원의 자금을 책정한 셈이다. 6부작인 디피로 환산하면 에피소드당 평균 제작비는 더 올라간다.

당초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텐트폴(제작사 사업 성패를 가를 작품)로 꼽히는 작품들의 제작비는 16부작 기준 150억~200억원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최근 들어 금액이 늘어난 것이다. 2016년 최대 화제작이었던 ‘태양의 후예’가 16부작 기준 제작비가 13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넷플릭스의 자금 규모는 반색할 만 하다.

풍족한 제작비 외에도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유통하려는 이유는 또 있다.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지만 넷플릭스는 제작사들에게 일종의 ‘턴키(제품 구매자가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생산자가 인도하는 것)’ 방식을 추구한다고 한다.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취지의 제작 지원이다. 편성부터 광고, 수위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가이드 라인과 이해 관계 속에 제작해야 하는 기존 제작 환경과는 다른 방식이다.

여기에 국내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방영된다는 것은 제작자나 연출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길 일이다. 성공적인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킹덤’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킹덤을 제작한 에이스토리(241840)는 킹덤을 발판 삼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뒤 추가 작품 제작에 나섰으며 김은희 작가는 국내 기존의 인지도를 뛰어넘는 명성을 쌓았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실감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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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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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투자 결실은 이제 막 시작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디피와 오징어게임 외에도 내로라하는 작가와 배우가 의기투합한 작품들이 방영을 앞두고 있어서다. 후발주자로 국내 OTT 진출을 선언한 디즈니나 HBO도 자금 면에서는 밀릴 게 없는 상황이다. ‘우리도 투자해볼까’ 하고 실행 버튼만 누르면 넷플릭스와의 정면 대결도 머지않은 모습이다.

넷플릭스의 사례는 국내 OTT들에게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이나 창작의 자유 측면에서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점에서 국내 OTT들이 이 정도 환경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국내 OTT들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나 벤처캐피탈(VC)들로부터 자금을 한껏 유치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밑 자금을 두둑이 챙겨 콘텐츠 대전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깔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똑같이 붙어선 승산이 없는 국내 OTT들로서는 자금 측면 외에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청자들의 만족도나 취향이 높아지다 보니 기존 콘텐츠보다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며 “국내 콘텐츠 업계가 새로운 변화에 접어든 시점에서 국내 OTT들도 이에 따른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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