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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사 충절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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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도록 '칠백의사 그 충절의 기록들' 발간

'조헌 관련 유품', '조참판일군순의비' 정보 수록

아시아경제

충남 금산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 700인을 모신 무덤이다. 의병장 조헌(1544∼1592)은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고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했다. 권율 장군은 중과부적(衆寡不敵·적은 수로는 많은 적을 대할 수 없음)을 탐지하고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보냈다. 조헌의 의병부대는 미처 받아보지 못하고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결전하다 모두 순절했다.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은 나흘 뒤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명명했다.

칠백의총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담긴 문화재 정보를 한데 모은 도록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칠백의총기념관이 소장한 유물 약 서른 점의 사진과 설명을 실은 상설전시 도록 '칠백의사 그 충절의 기록들'을 발간했다고 23일 전했다. 소개하는 문화재의 상당수는 '조헌 관련 유품'이다. 여섯 종 일곱 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다. 조헌이 선조 7년(1574) 명나라에 질정관으로 파견됐을 때 남긴 일기인 '조천일기'를 비롯해 문과에 급제했음을 알리는 임명장인 교지, 의병장 제수교서, 조헌종사문묘 교서, 치제문 두 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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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순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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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에는 '조참판일군순의비(趙參判一軍殉義碑)' 탁본첩에 관한 정보도 수록됐다. 조참판일군순의비는 금산전투의 경위와 순절할 인물들에 대한 추모 헌사를 적어 1603년에 세운 비석이다. 1940년대에 일본 경찰에 의해 폭파됐으나 2009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복원했다. 탁본첩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다. 칠백의총관리소는 지난해 이 자료가 조선 후기에 탁본해 첩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계자는 "탁본한 조공순의비를 통해 비문 전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라면서 "후대에 덧붙인 글인 '음기후지(陰記後識)'를 쓴 사람은 조선 후기 서예가인 김수증으로 확인됐으며, 글자를 새긴 각수(刻手)와 돌을 다룬 석공(石工) 명단을 추가로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도록 말미에는 김경태 전남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의 개요'와 박범 공주대 사학과 교수가 집필한 '금산전투 기억의 전승과 칠백의총의 조성' 등 논고 두 편도 실렸다. 국공립 박물관과 임진왜란 관련 단체에 배포될 예정이다. 칠백의총관리소 누리집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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