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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인터뷰] 이상률 항우연 원장 “독자개발 누리호 새 역사 쓴다… 우리 힘으로 화성 탐사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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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NH농협캐피탈빌딩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항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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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항공우주 역사 30년 만에 우주 독립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 로켓(발사체) 기술로 화성 궤도선을 쏘아올리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NH농협캐피탈빌딩에서 가진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한국의 독자 기술로 11년에 걸쳐 완성한 최초의 국산 로켓 ‘누리호’가 약 한 달 후인 다음 달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항우연을 중심으로 한국항공우주(KAI), 한화, 두원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300여개 기업이 누리호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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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에 세워진 누리호의 모습. /항우연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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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러시아·유럽(EU)·중국·일본·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스스로의 힘으로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국가가 된다. 로켓은 현재 우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미국 스페이스X 등이 열어젖힌 민간 우주 개척 시대의 흐름에도 한국이 뒤처지지 않고 쫓아갈 수 있게 됐다. 누리호 발사를 한 달여 앞둔 이날, 이 원장에게 누리호 발사의 의미와 한국 우주 개척의 청사진을 들었다.

이 원장은 1986년 항우연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 1990년 항우연 설립 후 지금까지 31년의 역사를 함께한 항공우주 전문가다. 아리랑위성3호사업단장, 천리안위성5호사업단장, 위성연구본부장, 부원장 등을 거쳐 2019년 11월 국내 최초의 달 탐사 프로젝트의 수장을 맡았다. 지난 3월 항우연의 12대 원장으로 부임, 누리호 발사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는 임무를 맡았다. 서울대에서 항공공학 학사·석사 학위를,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대학원에서 자동제어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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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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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위성 스스로 발사하고 ‘한국의 스페이스X’ 탄생도 기대

이 원장은 누리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지금까지의 성능·안전성 점검에서 누리호는 양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에 따른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보였다.

누리호는 아리랑·천리안·차세대 중형위성처럼 수백㎏에서 1t(톤) 이상의 무게를 가진 실용위성을 우리 힘으로 쏘아 올리기 위해 2010년 3월부터 개발됐다. 러시아 기술과 부품을 빌려 만든 로켓 나로호가 첫 발사에 실패한 2009년 8월과 재도전해 성공한 2010년 8월 사이에, 장기적으로는 로켓 독립이 반드시 필요할 거라는 공감대가 정부와 업계에서 형성돼 누리호 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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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중형위성 1호의 임무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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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는 내년부터 가벼운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우선 활용된다. 2026년까지 수십㎏ 무게의 초소형위성·소형위성 7기와 약 500㎏ 무게의 차세대 중형위성 3호를 실어 발사한다. 차세대 중형위성 3호는 지난 3월 발사된 저비용 양산 방식 ‘플랫폼 위성’ 차세대 중형위성 1호의 후속이다. 2026년이 되면 한국도 미국 스페이스X처럼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우주 로켓과 인공위성, 우주선 개발을 주도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이 로켓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항우연은 내년부터 기업과 공동으로 누리호 개량 작업을 수행해 실제 발사용 로켓 4기를 제작할 예정이다.

항공우주업계에서도 이번 누리호 발사가 한국의 스페이스X 탄생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이 원장은 “한국과 미국의 예산과 자원이 달라 스페이스X 같은 국내 기업이 탄생할 시점을 구체적으로 예상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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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국가 전략 기술… 도전의 연속이었던 11년

이 원장은 “로켓 기술은 어느 국가도 알려주지 않는 전략 기술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단 기술을 확보하면 산업·국방·학계 분야의 국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혼자서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는 기술 확보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2010년 누리호 개발을 시작했을 당시 한국은 설계와 제작은 물론, 수많은 부품의 성능을 각각 시험할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했다. 필요한 기술을 차례로 확보해나가는 동안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이 원장은 “어떤 장치들은 수치 계산으로 최적화된 구조를 구할 수 없고 선진국에도 정해진 해법이 없었다”라며 “무작정 설계하고 실패하고 다시 설계하는 정공법으로 극복해야만 했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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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누리호' 발사 전 최종 점검 단계인 WDR 시험을 위해 실제 발사에 사용될 비행 기체를 이송해 발사대에 기립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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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불안정 문제가 그랬다. 연소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로켓의 추진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연료가 타들어 가는 연소실은 3300~3400℃의 온도, 60기압의 압력이 작용하는 극한의 공간이다. 연소실 외부에 보관 중인 액체연료를 필요한 만큼 연소실 안에 주입해야 하는데, 내부 상태가 이렇다 보니 제대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원장은 “특별한 해결법은 없었다. 12차례의 구조 설계 변경과 20여차례의 시험을 거쳐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연소불안정 문제는 연소실이 클수록 발생하기 쉽다. 누리호가 300t의 추진력을 내는(300t급) 1단 엔진을 75t급 엔진 4기로 나눠 만든 후 하나처럼 작동하도록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적용한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클러스터링 역시 고난도 기술이라 누리호 개발에 또 다른 장애물이 됐다.

4기의 개별 엔진에 동시에 연료가 공급되고 점화돼 화염을 내뿜어야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1기라도 연소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4기의 추진력이 불균형해져 발사에 실패할 수도 있다. 4기 엔진이 하나처럼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종합연소시험’은 누리호 개발의 최고난도 과정으로 평가받았고, 지난 3월 이 시험을 통과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개발 완료를 의미한다”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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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1단 엔진의 종합연소시험이 이뤄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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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추진제탱크 제작 과정도 도전의 영역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연료와 산화제를 보관하는 추진제탱크는 3.5m의 지름에 2~3㎜의 얇은 두께로 만들어져야 했다. 로켓이 최대한 많은 연료를 실으려면 추진제탱크를 포함한 본체 무게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선박의 경우 본체를 아주 조금 더 두껍고 무겁게 만들더라도 안전하게 만드는 게 최우선이지만 로켓은 안전성만 강조하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라며 “그래서 극한의 조건까지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스페이스X의 경우 추진제탱크의 두께를 이보다도 더 얇게 만드는 건 물론, 액체산소의 부피를 줄여 탱크에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 산소가 고체가 되기 직전인 영하 210℃의 극저온 환경까지 만들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아직 누리호가 이 정도 수준엔 이르지 못했지만 문제 극복과 자립화 과정을 통해 기술 노하우가 한층 높아졌다”라고 했다.

◇ 9년 후 ‘달 착륙’ 등 활용성 무궁무진

누리호 개량 모델은 2030년 예정된 한국 최초의 달 착륙선 발사에도 쓰일 예정이다. 우주선을 달 궤도에 보내는 걸 넘어 지상 착륙까지 시키는 일은 미국·러시아·중국 3개국만 성공한 한 차원 더 높은 로켓 기술인데, 9년 후 한국도 누리호를 통해 이 반열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화성 착륙은 아직 시기상조지만 화성 궤도선 발사는 무게만 어느 정도 타협하면 현재 누리호나 개량 모델로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아랍에미리트(UAE)도 성공한 일을 한국도 못 할 이유가 없다”라고도 했다. 항공우주 분야에선 한때 UAE의 스승이었던 한국이 자극을 받고 누리호를 통한 우주 탐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UAE는 2009년 한국 기업 쎄트렉아이의 도움을 받아 첫 소형위성 ‘두바이샛 1호’를 쏘아 올린 후 12년 후인 올해 2월, 달 탐사를 건너뛰고 곧바로 화성 탐사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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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화성으로 발사된 세 탐사선. 왼쪽부터 UAE의 아말, 중국의 톈원 1호, 미국의 퍼서비어런스를 실은 로켓들. /유튜브 캡처(왼쪽)·로이터 연합뉴스(가운데·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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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주 시대에도 이 원장은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마련한 우주 인프라가 없었다면 오늘날 스페이스X도 없었다”라며 “한국 정부도 최근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우주 개발 거버넌스인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승격하는 등 우주 산업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누리호의 발사일은 이달 말 발사관리위원회에서 정해지지만 다음 달 21일로 잠정 확정된 상태다. 발사까지 남은 기간엔 그동안 안전 문제로 장착하지 않았던 화약류, 역추진용 고체 엔진 등 나머지 부품을 장착하고 발사 때까지 점검을 반복한다. 지난달 27일엔 누리호를 조립해 실제 발사대에 세우고 발사 전 최종 10분 과정을 성공적으로 테스트했다.

발사 이틀 전에 검토 회의를 거쳐 발사 전날 발사대로 누리호를 옮긴다. 발사 당일 날씨가 안 좋으면 연기되고, 날씨가 좋으면 연료를 주입해 발사한다. 과거 EU 아리안 로켓을 빌려 인공위성 천리안 1호를 발사했을 때도 여러 조건상 이유로 발사가 예정보다 3일 미뤄지기도 한 만큼, 누리호 역시 발사 당일 상황에 따라 일정 조정의 가능성도 남아있다.

누리호는 본체와 연료를 합친 총 무게 200t, 길이 47.2m, 최대 지름 3.5m 규모로, 각각 75t급 엔진 4기, 1기, 1기를 탑재한 3단 엔진으로 구성된다. 1.5t 무게의 가짜 위성을 싣고 600~800㎞ 상공에 발사된다. 성공하면 같은 모델을 다시 만들어 내년 5월 1.3t 무게의 가짜 위성과 180㎏ 무게의 실제로 작동하는 소형 위성을 싣고 한 번 더 발사해 성능을 재확인한다.



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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