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운드화 공매도 했던 소로스
비트코인 과도하게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
하지만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월가
"가상화폐 시장의 매력은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것"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지난 7월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서 조지 소로스가 이끌고 있는 소로스 펀드는 운용 중인 펀드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등을 거래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의 비상장 주식도 취득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소로스 펀드는 올해 초부터 가상화폐에 간접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지난 3월 소로스 펀드는 가상화폐 투자업체 뉴욕디지털인베스트먼트그룹(NYDIG)에 2억달러(약 2314억원)가량을 투자했다. NYDIG는 미국 거대은행 웰스파고와 JP모건 등과 협력하는 등 미 월가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투자업체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반전을 이뤄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지난 4월 사상 최고가 8199만원을 기록한 후 6월 339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7월부터 현재까지 약 40% 상승했다. 소위 말하는 저점인 시점에 가상화폐 시장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소로스의 투자 소식에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소로스의 악명 때문이다. 소로스라는 이름을 떨치게 한 것은 한 나라의 국운을 흔들 정도의 공매도였기 때문이다. 공매도란 주가 또는 지수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가격이 떨어지고 나면 다시 매입해서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공매도의 대가인 소로스가 비트코인도 결국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로스가 항상 하락에만 투자하던 인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그의 투자 패턴과 어떤 점에 집중하고 있는 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권교체까지 이어진 소로스의 파운드화 공매도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로스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일화는 1992년 9월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다.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한 후 100억달러를 풀어 공매도를 시작했다. 소로스가 움직이니 다른 헤지펀드들도 공격적으로 파운드화 공매도에 나섰다.
소로스의 판단 근거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당시 1990년 영국은 유럽의 단일통화권에 포함되기 위해 환율조정매커니즘(ERM)에 가입했다. ERM은 사실상 고정환율제로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의 6% 내외 안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으며 벗어날 기미가 보이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환율을 조정해야 했다.
이때 독일은 통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낙후된 동독의 경제를 끌어올리는 게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 동독의 마르크화와 서독의 마르크화의 1대1 교환을 단행한다. 당시 가치가 없던 동독의 마르크화가 서독의 마르크화로 바뀌니 유동성은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2년간 10차례 올린다.
독일의 금리가 높아지니 유럽의 자금은 독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독일 외 유럽국가들은 환율이 급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ERM을 가입한 영국은 환율의 급락을 막아야만 했다. 사실 핀란드처럼 마르크화 연동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충분히 환율 방어가 가능하다며 영국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집중했다.
이에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고평가돼 있다고 보는 동시에 영국 금융당국이 지닌 외환보유고가 400억달러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을 착안해 공매도를 시작했다. 영국은 단기금리를 10%에서 12%, 다시 15%로 재차 인상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시장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영국은 ERM 탈퇴를 선언하고 파운드화는 급락했다.
영국에 끼친 파급력은 엄청났다. ERM을 탈퇴한 영국은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유럽의 단일통화 유로 사용을 거부한다. 환율을 내리면서 영국 경제도 회복하기 시작하지만 정권이 뒤바뀐다. 대처 총리가 등장한 1979년부터 1997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보수당은 지지를 잃고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정권을 내준다. 반면 파운드화 공매도에 성공한 소로스는 한 번에 10억달러를 벌게 된다. 환율 시스템의 허점을 끝없이 공략해 엄청난 차익을 얻어간 셈이다.
공매도보다는 ‘재귀성 이론’에 집중해야
하지만 그의 공매도에 집중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로스는 공매도를 할 기회만 찾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는 사람”이라며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면 역시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1998년 그는 러시아의 상승세에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러시아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한 후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러시아의 국채 및 주식에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의 유탄을 맞은 러시아는 단기 부채 급상승과 재정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모라토리움(차관 상환 일시 연기)을 선언한다. 이에 소로스는 20억달러가량을 잃게 됐다.
그가 투자한 대상, 규모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재귀성 이론’이다. 재귀성 이론이란 주식 시장의 정보는 언제나 불균형해 시장 참여자들의 오류와 편견이 펀더멘털을 계속해서 왜곡한다는 학설을 말한다. 즉,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믿으면 상승 추세가 더욱 거세지면서 거품이 발생한다. 반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편견을 가지면 끝없이 하락해 저평가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경제적 의사결정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토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행동경제학과 큰 틀에서 일치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소로스 펀드는 4~5월 비트코인 급락이 과도하며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소로스 펀드가 비트코인 다루기 시작한 시기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비트코인이 50%가 넘게 급락하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 옹호론자였던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비트코인이 2만달러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 월가를 믿지 말 것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소로스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보고 다루기 시작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비트코인이 가진 기술적 가치보다는 일단 돈이 되기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소로스는 가치 투자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특별한 철학이나 목표를 지니고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 돈을 벌어야 하는 펀드 매니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로스 펀드는 2018년에도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에도 올 7월처럼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내부 승인이 떨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로스 펀드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도입한 온라인 소매업체 오버스톡닷컴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물론 이후 소로스 펀드는 가상화폐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나 블록체인 기술에 도움 될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소로스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언제든지 가상화폐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어느 기관투자자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리스크가 큰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담으려고 한다”며 “비트코인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곧 비트코인의 발전 혹은 제도권 편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담는 것과 투자 가치의 증명은 별개의 문제”라며 “오히려 미공개 정보를 활용하거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제재 받지 않는 시장이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